앙(仰) 이목구심서Ⅲ -19
오랫동안 망설이다 치과에 다녀왔다.
상악 좌측에 있던 사랑니와 25번 치아를 발치하였다.
이번에 치아마다 고유번호가 있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동안 치과에 몇 번 갔었지만 주목하지 않아서 기억에 없는 것이리라)
치아 정중앙을 기준으로 상악 우측은 11번으로 시작하고, 좌측은 21번부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하악 우측은 31번, 좌측은 41번부터로 각각 1~8까지 차례대로 숫자를 붙여 부르고 있다.
상한 이와 함께 하세월을 부대끼며 동거했다.
그러나 이젠 그럴 수 없는 상태였다.
"조금 따끔합니다"
마취주사가 사정없이 잇몸에 파고든다.
가시에 찔린 것처럼 따갑더니 곧 잠잠해진다.
갑자기 무중력의 공간처럼 한쪽이 텅 빈다.
왼뺨이 점점 얼얼해진다.
얼마 후 백발의 의사가 다가오더니 썩어버린 치아뿌리와 씨름을 시작한다.
치아가 기를 쓰며 버티다가 뿌리부터 뜯기는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통증은 없지만 막무가내인 쇠공구의 돌진에 공포스럽기만 하다.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천둥소리처럼 고막을 흔들어댄다.
이런데도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하다니 내가 목석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한다.
오십여 년을 함께 동고동락했던 치아가 결국 뿌리째 뽑혀 혀에 굴러 떨어졌다.
이미 낯설다.
낙엽이 지는 것처럼 이렇게 쉽다는 점에 놀란다.
살에 박혀있던 몸 하나가 빠졌는데도 별다른 느낌이 없다
너무 쉬웠다, 이별이.
피가 나는지도 몰랐다.
입안을 헹굴 때에야 흥건하게 묻어나는 붉은 피를 본다.
입안에 고이는 붉은 덩어리만이 치아의 부재를 말하고 있었다.
오늘 사랑니와 헤어졌다.
이 가을에 나는 나를 하나씩 떼어내 버리고 있다.
나는 부서지고 있다.
앞으로도 새로 얻을 건 없고 잃어버릴 것만 남았지 싶다.
버리고 버려 더 버릴 것이 없어지고 가벼워지면, 그때 시간은 나 자신마저도 버리라고 할 것이다.
'그래, 그때 되면 미련 없이 버려야지'
그 후엔 떠나버렸던 몸들이 이 세계 밖에서 다시 모여들까.
그래서 다시 온전히 한 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잇몸사이 새로 난 틈으로 덩어리진 바람이 들어왔다 나간다.
쉽게 들어온 만큼 대책 없이 나가버린다.
안녕, 떠나간 나의 조각이여.
나의 일부여.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 미소 짓고 슬픔을 견디던 나날들.
잊고 살았던 그 모든 평범한 날에 묵묵히 제 할 일을 다해준 너.
언젠가 어느 행성에서 다시 만나거든 그땐 내가 너의 이가 되어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