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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Apr 02. 2023

앙(仰) 이목구심서 14

운명은 예고 없이 방문하는 이웃처럼 다가온다


잘 자라, 우쭈쭈!


어젯밤부터 비가 세차게 내렸다. 잠깐 비 그친 오전, 윗집 바오로 씨가 찾아왔다.

 "혹시 이 집의 고양이 오늘 보았어요? 저기 길가에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는데 이 집 고양이는 아닌지 해서요."

나는 "아직 못 보았는데요. 혹시 모르니 가 볼게요" 하고서 모처럼의 휴일을 방구석에 내려놓고 문을 나섰다. 아내도 놀라 밖으로 따라 나왔다.


고양이는 우리가 이곳 산청에 이사 온 8년 전, 익산 북부시장에서 5천 원을 주고 데려왔다. 갓 어미젖을 뗀 수컷이었다. 이름은 아내가 '우쭈쭈'로 지어주었다. 집에 온 첫날부터 높은 담에서 떨어지면서 타지에서의 쉽지 않은 삶을 시작했다. 처음엔 우쭈쭈가 집안에서 생활하였으나 점차 커가면서 밖으로 나다니기 시작했다. 그래도 가끔 목욕시켜 주고 사료도 영양을 생각해서 좋은 것을 구매해 매일매일 챙겨주었다. 큰아들은 우쭈쭈의 간식을 사주고 먹을 물조차 정수기 물을 떠다 주는 정성을 보였다.

알다시피 이곳은 산과 인접해 있어 야생과 같은 곳이다. 멧돼지며 삵, 들고양이, 뱀 등 약육강식의 힘이 지배하는 냉정하고 위험한 세계였다. 더구나 일부 사람들은 야생동물을 사냥한다며 덫이나 올무, 독을 탄 음식물 등을 주변에 놓아두기도 했다.  어느 날은 귀가 찢기고, 어느 날은 다리를 다치고, 어떤 날은 살점이 뜯겨 피를 흘리기도 하고, 또한 눈병이 와서 산청이며 진주의 동물병원을 찾아다니곤 했다. 이런 우여곡절에도 우쭈쭈는 지금껏 잘 지내왔다. 무수한 위험과 유혹에서도 8년 동안 우리와 함께 살아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고현장까지 가는 내내 '우쭈쭈는 아니다. 녀석은 영리해서 자기 몸을 잘 지킬 수 있으니까'라고 믿었고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길가 풀숲 사이 희미하게, 누가 누워있는 게 보인다. 그는 버려진 물건처럼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져 있다. 머리가 내 쪽으로 향하고 있다.

설마--?  

아~, 이걸 어쩌나!

우쭈쭈의 얼굴이다. 매일 보아 오고 쓰다듬어주던 익숙하고 동그란 그 얼굴이다.

아, 이런---.

우쭈쭈는 쓰다가 구겨 논 종이처럼 온몸이 구겨져 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벌써 냄새를 맡고 날아온 말벌이 우쭈쭈의 눈에 날아들었다. 우쭈쭈를 만져보았다. 돌처럼 차갑고 딱딱했다.

'우쭈쭈?'

하고 불러도 보았다. 평소 같으면 고개를 들어 '야옹'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둘 사이엔 두려운 적막만이 놓여있다. 어젯밤 밥을 달라고 야옹거려 밥을 주고, 강가로 산책을 나가는 우리 부부를 보고서 마당 끝까지 따라오던 우쭈쭈였다. 어떤 때는 강변을 함께 산책하기도 하던 녀석이었다. 퇴근을 하면 마당에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키며 가장 먼저 반겨주는 그였다. 그런 우쭈쭈가 죽었다. 목숨을 잔인하게 빼앗겼다. 영영 도둑질당해 버렸다.

곁에 와 있던 바오로 씨는 어젯밤에 개들이 와서 고양이를 공격한 거라며 신고하고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우선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삽을 가져와 땅을 팠다. 대지는 이미 눈물에 촉촉이 젖어 구덩이가 쉽게 파였다. 우쭈쭈를 묻어주어야 했다. 숨이 빠져나간 몸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지난밤 느꼈을 극도의 공포와 고통의 무게였다. 차가운 비를 맞으며 다가오는 죽음을 감당할 수 없어 그는 틀림없이 불과  칠십여 미터 앞, 가족들이 있는 집을 바라보았으리라. 그의 눈에는 나와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보였으리라. 목을 긁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장난을 치던 부드러운 손길을 하나하나 반추했을 것이다. 다시는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을 때 그도 눈물을 흘렸으리라. 그의 머리와 감기지 않은 두 눈은 집으로 향해 있었다.

 '우쭈쭈야, 잘 가라. 아니, 잘 살아라. 윤회가 있다면 부디 다음엔 천수를 누리거라.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 사랑받고 호강하며 살거라. 한때나마 너를 귀찮아하고 외롭게 했던 일들은 정말 미안하구나. 부디 평안하거라. 그동안 우쭈쭈 네가 있어 우리 가족은 참 즐거웠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곁에 있어주어서 고맙구나. 우리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의 씨앗을 너는 심어놓고 떠났구나. 이젠 안녕. 안녕. 넌 이제부터 우리 마음 안에 살아있을 거야. 오랫동안 잊지 않을게.'  흙으로 그의 몸을 덮어 주었다. 잘 자라고 다독여 주었다.

'온종일 내리는 비는 우쭈쭈 너와 가족과의 이별 때문이구나. 방금, 너의 오늘과 함께할 내일을 앗아간 그 집에 다녀왔단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더구나. 두 마리의 검은 용의자들, 망할 개들만이 집을 지키고 있더구나. 그놈들은 나를 보고 짖지도 않고 역겹게도 꼬리를 흔들더라.  세상에 이렇게나 비겁한 놈들이었나. 이놈들은 자기보다 강자에겐 꼬리를 흔들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가 밤이 되면 야수로 돌변한다. 동네를 휘돌아 다니며 자기보다 약한 고라니나 고양이, 닭에게 달려든다. 사냥해서 먹을 것도 아니면서 그냥 숨을 끊어놓고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사라지는 놈들이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단다.

"ooo에 사는 사람입니다. 어젯밤에 선생님의 개들이 8년 동안 함께 지내온 저희 집 고양이를 물어서 죽게 했습니다. 그것도 저희 집과 가까운 곳에서요.  제발 부탁드리건대 밤에 개들을 묶어주십시오. 그동안 밤중에 여러 차례 개들을 만나거나 돌아다니는 걸 목격했습니다. 이러다간 사람까지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집주인은 수차례 미안하다며 사례를 하겠다고 하더구나. 우쭈쭈야, 돈을 받으면 다 되는 거니? 그러면 네가 '야옹'하며 살아 돌아오기라도 하는 거냐? 나는 마다했구나. 그리고 다시 한번 더 개들을 잘 묶어두거나, 커다란 우리에서 지내도록 해달라고 당부드렸단다. 우쭈쭈야, 너의 죽음으로 앞으로 다시는 이 마을에 개들의 폭력이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너의 희생이 헛되지 않겠지. 우쭈쭈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 정도로구나. 너를 지켜주지 못해 너무나, 너무나 미안하구나. 너는 불가항력인 야생의 세계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동안 잘도 버티며 살아 주었구나. 그동안 고생이 많았고 살아오느라 수고했다, 우쭈쭈. 하루가 서서히 문을 닫아거는 이 시간에도 비가 멈추지 않는구나. 너 없이 오늘 하루를 보냈단다. 우쭈쭈, 네가 자주 생각날 거야.  

우리 모두 너에게 고맙고, 고맙고, 고맙고....

잘 자라, 우쭈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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