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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Apr 06. 2023

앙(仰) 이목구심서 15

보물산

따뜻한 사월 초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집 근처 둘레길을 걸었다.

이곳 성심원은 지리산 둘레길 제7구간이 지나는 코스이기도 하여 평상시에도 길을 걷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전에는 여러 번 다니던 길이었지만 요 근래에는 가지 않던 웅석봉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산벚꽃과 개복숭아꽃이 절정을 다한 후라서 계곡을 찾아온 바람에 꽃잎들이 흩날리고 있다.

산기슭에 꽂아놓은 커다란 막대기 같던 참나무도 난아기 손가락 닮은 연둣빛 이파리를 내밀어 꼼지락 거리고 있다.

계곡 물소리를 자장가 삼아 듣고 있던 오리나무도 깨어나 손톱만 한 잎사귀로 봄을 만지고 있다.

나는 봄산에 들어서면 시력이 아주 좋아진다.
빽빽한 관목들 사이에서도 나물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걷다가 길섶 사이에 선 고사리를 보았다.
고사리가 주먹 쥔 팔뚝을 한 뼘가량 지상에 곧게 뻗어 올렸다.
그것은 연녹색의 미역줄기같이 매끈하다.
나는 이때부터 숲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눈동자를 굴려가며 고사리를 찾는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숨어있는 고사리들을 찾아내어 꺾어나갔다.

얼마쯤 꺾다 보니 이번엔 두릅이 눈에 들어온다.
봄두릅은 관절에 특히 좋다고 아내도 기뻐한다.
가시 달린 나무 끝 꼭대기에 탐스러운 두릅이 푸른 왕관처럼 얹혀있다.
나는 좀 미안스러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왕관을 벗긴다.
"똑"
맑고 명량한 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진다.
봄기운을 받고 자란 나무이기에 소리조차 봄을 닮았다.
잘린 두릅의 끝에는 투명하고 점성이 강한 물방울이 이슬처럼, 눈물처럼 솟구쳐 맺힌다.


나무 아래에는 취나물이 다소곳이 앉아있다.
여린 순을 손톱으로 끊을 때마다 올라오는 취나물의 독특한 향기는 온몸을 취하게 한다.
나는 나물 중에 취나물의 향을 가장 좋아한다.
상큼하고 싱그러운 맛은 오직 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한 맛이다. 실로 봄산에서 얻은 취나물의 맛은 봄 식탁의 여왕이라 불릴만하다.
맨손으로 산에 들어갔으나 내려올 때는 양손이 부족해 손수건으로 한가득이다.

봄산은 어머니의 품 같다.
절대 그 품 안에서 배고플 일이 없다.
고향을 찾아온 아들에게 바리바리 싸주시던 나이 든 어머니처럼, 봄산은 빈손으로 보내지 않는다.
간혹 산나물을 원치 않는 이라도 봄산은 울긋불긋 꽃들로 눈을 배 불리고, 그 향기는 코를 채워주며, 짝을 부르는 세레나데인 산새들의 노래와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소리는 귀를 씻겨주고, 봄산의 은 아픈 마음을 치료해 생기를 북돋아 준다.

이처럼 봄산에 가면 잃는 것 없이 오히려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봄산은 없는 게 없는 보물창고요,
무에서 유의미한 유를 만들어내는 요술램프다.

점심 식탁엔 여러 나물들을 올려놓고 평소보다 더한 입맛에 봄으로 속을 채워갔다.

오히려 봄이 우릴 집어삼켜버렸다.

보물이 가득한 창고를 가진 우린 지상 최고의 부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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