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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Apr 10. 2023

앙(仰) 이목구심서 16

사월의 신록

사월의 신록


  사월에 들어선 산은 연둣빛에서 초록까지 푸르름으로 출렁거린다. 진달래도, 산벚꽃도 다 떠나보낸 사월의 산에는 물방울 하나둘 모여들어 강을 이루듯, 초록 한 방울이 떨어져 산 전체를 물들인다. 산등성이와 계곡을 따라서 펼쳐지는 연초록 휘장의 거대한 물결은 파노라마로 이어지다가 멀리 지리산 정상을 업고 하늘에까지 오를 기세이다. 때로는 완만하게 흐르다가도 폭포처럼 급강하하고, 바위를 만나 머리를 돌려 마을이나 강가로 내려오기도 한다. 산봉우리 하나하나, 언덕 하나하나가 연둣빛 꽃송이를 만들아가는 장관을 보고 있노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장미나 목련이 주는 느낌과는 다른 차원이다. 신록이 주는 아름다움은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지만 묵직하게 흐르는 연초록 물결은 가슴을 다 채우고도 남을 벅찬 감동으로 밀려온다. 녹음에 뒤덮인 산과 계곡, 언덕과 들을 보라. 이때 산을 살짝 흔들거나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찌르면 연초록의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이곳은 신록의 바다이며, 향연이다. 눈에 온전히 담아 보려 하지만 눈이 모자라고, 가슴에 담아두려 해도 터져버릴 것만 같은 위태로움에 그냥 흘려보내고 만다. 붙잡아두지 못하므로 흐르도록 놓아둘 수밖에 없다.

  사월의 신록에선 호흡을 할 때마다 연초록 입자들이 목을 타고 들어온다. 이어서 허파와 심장을 채우고, 붉었던 피도 연초록으로 변하여 몸 구석구석을 돌게 된다. 어느새 몸은 푸른 나무가 되고 잎사귀가 되어 살랑이는 바람에도 몸을 흔든다. 나는 지워지고 초록이 된 것이다. 별도의 존재가 아니라 산의 일부요 산 자체가 되어 신록으로 서 있다. 귓불을 간질이는 가벼운 바람에도 내 몸의 잎사귀들은 소란스럽다. 하굣길의 십 대 여학생들처럼 '까르르까르르' 피어오르는 웃음소리는 연둣빛이다. 이 웃음엔 생명이 묻어난다. 그래서 신록이 좋고, 사월이 반갑다. 신록 아래에서는 나무처럼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손톱만큼 작고 여린 새싹이 어느새 자라나 연초록으로 무성하다. 작은 불씨로 온 산을 태우는 이른 봄의 불길처럼, 초록 한 방울은 손쉽게도 산을 점령해 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사불란하게 가능할 수 있을까. 이는 미리 계획하고 안배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지난 겨우내 나무들은 광장에 모여 봄을 준비하며 구석구석 빠짐없이 설계도를 그려왔다. 나무마다 잎사귀는 오십삼만이천삼백팔십구 장, 열매는 삼천구백오십이 개, 허공에 새로 건설할 나뭇가지의 길이는 사천팔백구십오 미터. 이처럼 구체적인 설계에 따라 나무들은 꼼꼼히 자재를 준비하고 필요한 식량을 비축하며 최적의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코 일 없는 한량처럼 겨울잠에 빠져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 눈보라 치던 날도 어느 때보다 바쁜 하루였으며 긴장되고 설렘 가득한 시간이었다. 갈고닦고 저장하고 비우며 견디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드러나지 않게 계획하고 준비해 온 시간으로 인해 봄이 되자 순식간에, 적확하게 '녹색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한 잎의 잎사귀도, 열매 하나도 허투루 달린 것이 아니다. 열매가 열리거나 잎이 떨어지는 것도 나무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다. 비록 비바람과 폭풍은 계획에 없는 재난이지만 이 역시 나무는 최소한으로 피해를 줄이려 대비해 놓았다. 잔가지를 꺾어 내기도 하고 얼마간의 풋열매를 포기하기도 한다. 이는 사월의 나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의 처세이며 지혜이다.

여름 숲이 거칠고 폭력적이라면, 사월의 신록은 온화한 부드러움이다.

여름 숲이 함성이며 포효라면, 신록은 잔잔한 대화이고 즐거운 재잘거림이다.

신록은 그래서 아이의 풋풋함이며 미래를 품은 희망이다.

여름 숲이 자유분방하고 날카로운 추상화라면, 신록은 조화로운 한 폭의 수채화이다.

신록의 그늘에 마냥 있으면 편안해진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심신의 뭉침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곧 사월의 신록은 효과 좋은 파스이다. 세상의 온갖 화려한 색깔에 찔려 상처받은 눈과 온몸,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영혼에 붙여놓는 신록의 파스는 화끈거리고 부어오른 상처들을 시원스럽게 잠재우고 어루만져 치료해 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세상을 향해 힘차게 걸어 나가도록 생기를 북돋아 주기까지 한다. 모두가 지친 몸으로 봄 산에 들어왔다가 신록의 위로에 편안해지고 치유받는 것이다.

  사월에는 고라니도 멧돼지도 이젠 산을 내려오지 않는다. 마을의 텃밭에 기웃거려 위협과 미움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산에는 먹거리가 다양해져 배고픔을 잊게 한다. 어린 새끼들과 둘러앉아 주고받는 순한 눈동자에 식탁의 풍요로움이 찾아온 것이다. 이처럼 신록은 사람뿐만 아니라 산짐승까지도 두루 아우른다. 그만큼 신록의 품은 넓고 풍요롭다. 이런 평화가 한겨울에도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시절이 언제까지나 사월일 수 없고 신록만을 고집해서도 안 됨은 당연한 사실이다. 모든 계절이 나름의 축제를 준비하고 있고 의미 있는 열매를 가지고 있다. 다만, 연둣빛 잎사귀의 광휘도 잠시 지나가는 한때이므로 이 순간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사월엔 전 지구적인 신록의 잔치에 참여하여 즐기고, 그 품 안에서 감동하며 살아가면 그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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