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仰) 이목구심서Ⅲ -22
축제는 끝이 났으나 꽃은 여전하다.
둘레길 프로그램으로 구례 산수유마을을 찾았다.
발달장애인과 함께 가는 길이다.
고속도로를 타니 고작 한 시간 십 분 거리다.
작년 봄에도 분명 다녀왔는데 처음처럼 낯선 느낌이 든다.
어렴풋이 몇몇 건물에 기시감이 들뿐 눈에 보이는 풍광이 전혀 기억나질 않는다.
왜 내 머리에서 지워진 것일까.
아마 그때도 산수유꽃의 쓰나미에 휩쓸려 온 정신을 빼앗겨 버렸지 않았나 싶다. 황금으로 가득한 마을을 보며 일종의 충격처럼 다가왔고, 그래서 담고 있기가 버거워 기억에서 지운 것일 게다.
더구나 산불과 수해로 인한 공포와 무기력은 기억에 크나큰 변화를 주었다.
구례군 산동면, 도로 양쪽에서 환호성과 박수가 조각조각 황금 파편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마을 전체가 우릴 환영하고 있다.
축제가 어제 끝났지만 마을은 여전히 그 여운이 남아있다.
경탄과 환희의 발소리가 뒤섞여 메아리치며 마을 곳곳에 배어 있다.
키 큰 산수유나무 아래를 거닐면 노란 꽃가지가 어깨를 스친다.
격려와 위로의 손길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향기는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하게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잔잔한 냇물과 어울려 세상 속으로 흘러내린다.
나뭇가지를 붙잡고 꽃 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아주 작은 축제가 꽃마다 펼쳐지고 있다.
샛노란 폭죽이 터진 순간 멈춘, 작은 꽃송이 하나의 축제, 이 하나가 여럿이 모여 좀 더 크고 완전한 꽃의 공동체로 완성되었다.
이 작은 축제들 수천억 개가 모이고 지상의 은하수가 되어 거대한 지역 축제가 되었다.
오전에는 아랫마을 꽃담길을 걸었다.
냇가를 따라 구불구불한 꽃길은 더없이 상쾌했고 운치가 있어 계속 걷고만 싶었다.
출사 나온 사진가들이 곳곳에서 셔터를 누르고 있다.
나 또한 작은 휴대폰에 쉴 새 없이 꽃을 포획해 담아본다.
나무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다는 듯이 허름한 돌담 옆에 비뚜름하게 서서 환하게 웃고 있다.
또 다른 나무는 냇가에 바짝 엎드린 채로 꼼짝도 않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내가 얼른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주니 나무는 그제야 긴장을 풀고 냇가의 물을 마시려 긴 팔을 늘어뜨린다.
오후에는 차로 상위마을에 올라갔다.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풍광은 선경이 따로 없다.
듬성듬성 앉아있는 집들이 황금빛 호수에 파묻혀 있는 것 같아 찬란하게 위태롭다.
산수유가 집 울 안에, 개울가에, 언덕에, 길가에서 마을을 온통 채우고 있다.
모나지 않게 적재적소에 서 있는 나무는 마을의 주인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무려 11만 7,000그루가 넘는 산수유나무가 여기에 산다고 한다.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홈페이지 참조)
사람은 도시가 좋아 하나둘 떠나갔지만 나무는 오히려 뿌리를 단단히 박고 정착하여 오랫동안 이 마을을 지키며 살아오고 있다.
이제는 상위마을, 하위마을, 반곡마을, 대평마을로 이어지는 산수유꽃이 도시로 떠난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인다. 그러니 축제의 열매와 영광은 모두 산수유나무에게 주어야 한다.
문득, 처음 꽃을 피워 봄길을 내기 시작한 꽃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엉뚱하게도 밀려왔다.
언제나 앞서가는 자는 많은 시련과 오해와 저항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먼저 걸어갔기에 뒤따라가게 되고 이게 반복되다 보니 결국 단단한 길이 생긴다.
처음 꽃망울이 눈을 뜨자 뒤이어 다른 꽃들도 활짝 문을 열어젖혔다.
첫눈, 첫 출근, 첫걸음, 첫 열매와 같은 모든 "첫"에 경의를 보낸다.
처음으로 발화했을 그 산수유꽃이 여기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모든 꽃이 각자 사연을 가지고 있고 저마다 역할이 있다.
근처 계척마을은 천 년 전에 중국 산동성의 처녀가 이곳 지리산 기슭에 시집을 왔는데 그때 산수유 묘목을 가져와 심었다고 한다. 그 나무를 시목(始木)이라 부른단다.
아쉽게도 일정이 빠듯해 시목을 찾아가 보지 못하였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엔 꼭 둘러보리라.
오늘 하루 내 동공과 가슴엔 노랑이 온통 들어와 있다.
오늘만을 따로 떼어내 쥐어 짤 수 있다면 산수유 노란 물감이 양동이에 한가득 고일 것이다.
그래서 이젠 노란색만 보면 산수유 꽃이 생각나고 구례에 가고 싶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