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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y 02. 2023

앙(仰) 이목구심서 21

숫자 영(0)에 대하여

숫자 영(0)에 대하여


'0'없음이다.

존재하지 않는 허무이다.

그림자도 없는, 재 아닌 어떤 것이다.

무시되고 주목받지 못한다.

쓸모없다고 주저 없이 잘라 내버린다.


그러나 '0' 존재한다.

더구나 누구보다 힘이 세다.

가 선 자리에 따라 몸값이 달라진다.

그는 그림자가 있으며 무겁기까지 하다.


숫자 앞에 설 때 '0'은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다.

앞길을 막아서며 걸리적거리는 오르막길의 낡은 화물차일 뿐이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월급날 통장에 찍힌 숫자 뒤의 '0'을 보아라.

'0' 많을수록 기분 좋아질 것이다.

삶이 맏아들처럼 든든해질 것이다.

이때의 '0'의 힘은 강력하다.

이 태양계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그의 어깨에 올려놓았.

가벼웠던 그가 순식간에 귀한 왕족으로 대접받는다.

신분상승의 혁명이 발생하는 것이다.


숫자가 위치에 따라 신분이 달라지니 어느 자리에 서야 하겠는가.

모두가 중심이 되고자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저기 어디께에 각자의 자리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모든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을.

끝이 없이는 처음도 가운데도 의미 있게 존재할 수 없다.

1,000,000에서 끝이나 중간에 있는 '0'을 버려도 되는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그러므로 나도, 당신도 소중한 존재다.


'0'에서 왔으니 영으로 돌아가라.

그러나 지금, 어느 위치에 설 것인지는 내가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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