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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y 01. 2023

시간(詩間) 있으세요?

너는 왜 내가 아니고 너인가

# 너는 왜 내가 아니고 너인가
  (레쉬니한 증후군으로 응급실에 온 영에게)

너는 지금 상처 입은 한 마리 새끼 냥이다
무력하게 침대에 가라앉은 너
모니터의 숫자들이 거대한 침묵을 뚫고
비틀거리며 신음하는 심야의 응급실이
너의 피난처이자 안식처이다

너는 왜 아픔을 타고나야 했는가
전생의 어느 전쟁터에서
중상을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났는가
고통이 일상이 되어버린 너의 운명아
너는 왜 나와 다른가

너는,
네 삶에 항의하지 않는다
반항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다
너 스스로 포기한 것이냐
어쩔 수 없어 수용한 것이냐
처음부터 고통이었으므로 당연한 게 되었느냐
너의 삶과 나의 생은 무게가 다르더냐
나의 하루가 너의 하루보다 소중하더냐
내가 너보다 삶을 더 의미 있게 살고 있더냐
나의 피는 네 것보다 차갑고 혼탁하구나
나의 똥은 네 것보다 지저분하고 구리구나
네 눈동자는 새벽이슬처럼 또르르 흘러내릴 것 같구나
너의 살결은 오월처럼 푸르러 싱싱하구나
너의 웃음은 맑아서 향기롭구나
그러나 고통은 너의 삶보다 커다랗구나
너의 호흡은 오래 잊힌 묵정밭처럼 거칠구나
날개에 상처 입어 비틀거리는 어린 비둘기처럼
너는 현실의 잔인함에 파르르 떨고 있구나

알고 보면 너는 몽매한 나를 가르치려고
소멸로 내 닿는 나를 건져내려고
우는구나, 절뚝거리는구나,
순정한 눈물로 세상의 어둠을 닦아내고자
병상에 누운,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의인 열 명 중 하나,
초라하고 약하고 무기력한 어린양이여,
자신을 변호하지도 소리 내 웅변하지도 않는구나
밟히거나 당하거나 잊혀지는 게 너의 일이구나

나의 안일한 일상의 나날은
너의 치열한 아픔의 순간들을 조합한 것.
나의 비린내나는 연민이라는 감정도
너의 잊혀지고 버려진 기쁨들의 편린일 뿐.
나는 너로 인해 가지를 뻗어가고 햇볕을 쬐는
우거진 가시덩굴이다
너는 상처 난 삶을 어깨 위에 업고 사느라
그 무게에 휘청거리다 넘어지는 투사이다
네가 아니었다면 다른 누군가가 대신했을,
고통, 고통, 고통

응급실 차갑게 녹이 슨 낡은 침대에
허물어진 건물처럼 드러누운
너를 본다
그리고 묻는다,
너는 왜, 내가 아니고 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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