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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y 07. 2023

시간(詩間) 있으세요?

들다

#들다


난 어르신을 모시는 직업을 가졌다

어르신들이 식당에 가거나 프로그램을 하거나 다른 활동을 하게 되면 대부분

들어서 휠체어에 앉혀야 한다

체구가 작은 분도, 큰 분도 요령껏 들어야 한다


년 하고도 두 해를 건너온 삶은 몸이 작아

십여 킬로그램이 되지만 들어 보면 만만치 않다

하체와 팔이 잔뜩 긴장하고 허리가 뻐근하다

그렇겠

여 년 동안 적금처럼 몸에 쌓인 하루하루들

순간순간의 상념

기쁨들

아픔들

어두 껌껌했던 저녁들

발걸음들

 세기 동안 넓어지고 깊어지고 무거워졌을

안구에 들어가 자리 잡은 사계와 풍경들

산과 바다를, 난 든다

반백이 백 년을 든다


나는 오늘도 출근한다


삼일만세운동을

해방의 만세소리

육이오 전쟁의 탱크를 든다

보릿고개도 새마을운동도 든다

어르신이 걸으신 수많은 길들을 든다

마음 안에 들어앉은 꿈과 희망들

굳건한 믿음을 든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든다

우주를 든다


한 생이 다른 생을 든다는 것

한 생이 내게 몸을 기댄다는 것

기적이다


이십 세기와 이십일 세기를 드는 세기의 사나이

나는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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