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샀다. 이렇게 되고 보니 땅을 사는 것도 결혼처럼 정말이지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 말이 영구불변의 법칙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 ‘때’라는 것이 고민하며 살아왔던 매일의 결과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오늘도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생각이 많고, 걱정도 많고, 겁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잘 해내고 싶은 마음도 커서 어떤 큰 결정 앞에 엄청나게 많은 고민을 한다. 그래서 연애시절부터 집 짓고 사는 것이 꿈이었음에도 마음 한구석에 ‘아직 준비되지 않았음’이라고 커다랗게 써 놓고 늘 빨간 불을 켜두었다. 처음 시골에 살게 되었을 때는 ‘미래도 불투명한 마당에 무슨 땅이야’하며 몇 년, 정착을 결심한 뒤에는 ‘사고는 싶은데 알아볼 시간이 없어’라며 또 몇 년, 그러다 진짜 집의 필요를 느끼게 된 이후부터는 ‘사긴 사야 되는데 엄두가 안나’하면서 또다시 몇 년을 보냈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 당장 집에서 쫓겨나 길 위에 나앉을 위기에 처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좁고 불편하고 그래서 자주 싸움도 나지만 그렇다고 못 살 것 또한 아니었으므로 이렇다 할 절박한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이제야 절박한 마음이 생기려는 찰나 어느 날 마을에 살고 계신 남편의 고등학교 친구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기 우리 동네에 집짓기 좋은 땅 있으니까 얼른 들어와” 이후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드라마틱한 일이 많았는데, 어쨌건 결국 그 땅을 사게 됐다. 조금 갑작스러웠고, 지극히 당연했다. 땅을 사고 나니 집을 짓는 일은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우리를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 처음 땅을 사게 되었을 때만 해도 마치 내가 남편과 결혼을 했을 때처럼 뭔가에 홀린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허공에 떠도는 불안과는 달리 눈앞에는 펼쳐진 집짓기 여정은 정확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연애시절부터 우리 부부는 언젠가 짓게 될 우리 집 도면을 그리며 놀곤 했다. 사실 주로 남편이 그리고 나는 구경을 했다. 지금은 농촌연구자로 살고 있는 남편이지만, 어릴 적 꿈은 건축가였다고 했다. 내가 그의 오랜 꿈을 알게 되는 날은 주로 논문을 쓸 때였다. 석사논문을 쓸 때에도 박사 논문을 쓸 때에도 힘든 순간(고통의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아, 건축학과를 갔어야 했는데.” 그런 얘기를 하며 내 앞에서 여러 가지 도면을 마구잡이로 그렸다. 그렇게 여러 장 그리고 나면 일그러져있던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요즘 남편은 자주 그때의 얼굴을 하고 있다. 퇴근해서 힘들고, 일요일이라 우울하고, 그냥 몸이 아프고(…) 그런 와중에 집을 그리면 얼굴이 밝아진다. 남편이 도면을 그리고 있으면 아이들도 옆으로 와서 따라 그린다. 첫째 울림이는 로봇집, 둘째 이음이는 오두막 집, 셋째 우리는 미끄럼틀 집. 옹기종기 모여 집을 그리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면 내 얼굴도 같이 밝아진다. 옆에서 가만히 보며 흐뭇해하고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말한다. “보고 있지만 말고 핀터레스트 좀 자주 봐봐.” “보고 있지만 말고 부엌 디자인 좀 해봐.” “보고 있지만 말고 의견 좀 줘봐.” 자꾸만 귀찮게 물어보는 남편 질문에 당당하게 도망치기 위해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연재가 끝날 때쯤에는 어쩌면, 진짜로, 드디어, 마침내 우리 집이 완성되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