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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해원 Sep 19. 2024

집이 필요해

© 노해원 2022


    지난주 첫째 울림이가 수족구에 걸리는 바람에 내내 학교를 못 갔다. 가족들과 있을 때면 가장 시끄러운 녀석인데 둘만 있으니 집도 울림이도 아주 조용했다. 둘이 있어도 하루종일 떠드는 막내 ‘우리’와는 달리 함께 있는데도 각자의 생각에 더 많이 빠져 있는 울림이를 보며 사춘기 아들을 두었다는 것을 새롭게 실감했다. 대들고 싸울 때는 ‘빌어먹을 사춘기’라며 자주 내적 고함을 쳤는데, 같은 공간에서도 자기의 시간을 보낼 줄 아는 것도 사춘기라 생각하니 반가운 일처럼 느껴졌다.


울림이는 사춘기에 접어들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놀아야만 하는 공간을 쓰고 있다. 그래서 울림이는 자주 신경질이 난다. “누가 내 물건 만졌어!” "리코더 다른 데서 불면 안돼?" “신경 쓰이니까 그만 좀 쳐다봐.”(컴퓨터로 숙제하는데 동생들이 옆에 붙어있음) 그러고도 분에 못 이길 때는 이제 아파트라도 좋으니 자기 방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 아이를 보면 나도 같이 마음이 심란해졌다. 집 짓기의 꿈은 있었지만 이렇다 할 절박함 없이 지냈던 우리에게 절박한 마음이 들게 한 첫 번째 이유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울림이에게 방을 주어야 한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들어가는 아이에게, 자기의 물건 소중히 하는 아이에게, 새벽에 일어나 혼자 보내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아이에게, 그렇게 여태 잘 버텨준 고마운 울림이에게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


(요즘 울림이가 인터넷에 올린 사진 다 지우라고 해서 최근 사진은 더욱 못 올린다. 언젠가 있던 사진이 사라진다면 들킨 것으로 생각해 주시길...)

© 노해원 2022
© 노해원 2022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은 마을 가장 끝에 산 아래 있는 통나무집이다. 올해로 7년째 살고 있다. 막내 ‘우리’가 태어난 지 6개월쯤에 왔는데 이 녀석이 벌써 내년에 학교를 간다. 업혀 다니던 아이가 걷고 뛰고 말하고 쓰는 시간을 오롯이 이 집에서 보냈다고 생각하니 7년이라는 시간이 짧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리 가족의 첫 번째 주택 살이었고, 이곳으로 온 것을 절대 후회하진 않지만,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우리는 분명 다시 이곳으로 올 테지만 정말 쉽지 않은 집이었다는 것 또한 명확하다.


이 집의 장점은 시골에서 구하기 어려운 전셋집이고(대부분 매매나 연세로 나온다), 마을의 가장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우리만의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매일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고, 아주 특별한 이웃을 만날 수 있고,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출입이 어려워 마당에 풀을 잔뜩 자라게 해 놓고도 혼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장점에 대해 가장 많은 감탄은 하는 것은 신기하게도 남편이었다. 내가 이런 남편의 태도에 대해 ‘신기하다’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유독 이 집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대문자 T남편과 대문자 F인 나의 성향이 바뀌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 집에 처음 방문한 친구들이 “이 집에서 사는 거 어때?”라고 물으면 남편은 ‘이 집에 살게 되어 우리 삶이 얼마나 윤택해졌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그럼에도 이 집의 실태는 얼마나 처참한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매일 저녁 이 집으로 들어오는 길은 얼마나 놀라운지 몰라요.”

“이 집이 진짜로 홍성에서 제일가는 노을 맛집 이라니까요.”

“가을에는 집 안으로 반딧불이도 들어와요.”

남편이 이런 말로 감탄하면 나는 옆에서


“반딧불이가 집으로 들어온다는게 무슨 말인지 아세요? 이 집 어딘가에 반딧불이가 들어올 만큼의 틈이 있다는 거예요.”

“지네 물려본 적 있어요? 저는 한 번에 세방을 물렸다니까요.”

“저희 집 마당 보셨죠? 풀 자라는 속도가 말도 못 해요.”

라고 말하는 식이다.


우리가 살기 전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 걱정부터 해주었고, 5년쯤 지났을 무렵부터는 걱정의 눈빛이 존경의 눈빛으로 바뀌었다.(역대 세입자 중 우리가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중이다) ‘통나무 집’이라는, 주소를 적을 때마다 미소를 짓게 되는 낭만적인 이름만큼이나 이 집의 모습은 한 폭의 동화 같다. 2층에 3층다락까지 있는 이 집을 처음 보면 그 규모에 압도되어 감탄한다. 그러나 집으로 들어오면 느낌표는 곧장 물음표가 된다. 특히 주 생활공간인 1층은 방 2개와 주방과 작은 거실이 이어진 형태로 되어 있는데 마루와 부엌은 다섯 식구가 오밀조밀 붙어 있을 수 밖에 없는 크기이고, 2개의 방은 하나의 방 안에 아주 작은 방이 하나 더 있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실험적인 구조이다. 더불어 이 집의 주 소재인 통나무는 너무나도 친 환경적이어서 인간뿐만 아니라 온갖 벌레들에게도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에 그들이 침투가 어마무시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어릴때는 이런 불편함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꼭 우리 집이 아니어도 오래된 주택에서는 쉽게 나타나는 일이고, 그런 면에서 다섯 식구가 살기에는 좀 좁고 비효율 적이라는 것 외에는 이 집에서 사는 장점으로 얻는 것이 더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집에서 차지하는 부피가 점점 늘어나고, 나도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나니 큰 일 아니라 생각했던 불편함들이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쥐와 친구 하며 살았다는 권정생 선생님과는 달리 나는 모기 한 마리에도 요란을 떠는 사람이었고, 아이들이 커가며 생기는 여유를 집에서 충분히 누리고 싶었다. 그러려면 적어도 지금보다 조금 더 효율적인 집이 되어야 했다. 그것이 집을 짓고 싶은 두 번째 이유였다. 경제적 효용을 넘어 불필요한 동선을 줄이고, 불편함과 불쾌함을 줄임으로써 덜 소모적인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다음 집에 바라는 효용이었다.


© 황우리 2022


    나에게 집은  오랜 시간 먹고 자고 싸는 ,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 주택, 빌라, 기숙사, 자취방  여러 집을 거쳐 왔지만 대부분이 그랬다. 특히 부모님 품을 떠나 대학에 가면서 하숙을 했을 때나, 친구랑 둘이  평짜리 단칸방에  때도     있고, 언제든 가서   있으면 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방에 가는  보다 친구들 방에 가는 날이  많았다. 애정이랄게 없고, 그래서 낯설고 불편할 때가 많았던  방에 가는 것보다 애정이 뚝뚝 흘러넘치는 친구들의 집을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중 가장 많이 갔던 곳이 남편의 자취방이다. 내가 남편과 결혼할 수 있었던 것에 8할은 그 자취방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곳에서 우리 사이에 역사적인 일들이 많이 생겨서이기도 하지만 그 방이 주었던 분위기나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워둔 그 공간이 매우 낭만적이었기 때문이다. 1.5룸에 꽤 오래된 자취방이었고, 작은 부엌과 이어진 마루 공간, 그리고 방 한 칸이 있는 집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벽장에는 친구들과 먹었던 술병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앞에 작은 술집을 연상 캐 하는 식탁과 은은한 조명이 매력적인 집이었다. 남편은 그 책상 옆에 커다란 달 포스터를 붙여 두고 그곳을 ‘달방’이라고 불렀다. 집에 이름을 붙여 주고,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 사이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술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 사람이 그 방 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나는 매일 그 집에 가고 싶어 핑계를 댔다. 과제를 해야 하는데 도서관 문을 닫아서, 시험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근처에 맛있는 집을 찾아서, 돌아가는 길이 멀어서, 술에 취해서, 그 방이, 네가 보고 싶어서.


 사람을 만나고 알게 되었다. 집이란 단순히 먹고 자고 싸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들을 가득 채우고 매일 그것들을 사랑하며   있는 , 내가 가장 안전하고 완벽하게 풀어헤칠  있는 ,  뭍은 이야기들이 쌓여가게   있는 곳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나도 그런 집을, 마음껏 가꾸고, 바꾸고, 꾸밀  있는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우리가 함께  집을 그리며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사람과 함께라면 그것이 정말로 가능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 황바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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