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조
오랜만에 축구부 친구들과 밥을 먹었다. 우리 동네 리그가 끝나고 수고했다며 조조가 식사 초대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조조네 집에 갔다. 철로 된 초록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커다란 안 마당과 안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구옥들이 있는데 그중 대문 바로 맞은편에 있는 건물이 조조가 살고 있는 집이다. 안 마당 한가운데에는 1미터 높이의 작은 화단이 있고 그 화단 정 중앙에는 커다란 목련나무가 심겨 있다. 철문을 열고 안 마당으로 들어가니 놀러 온 이웃 개 꼬물이가 먼저 인사를 한다. 집으로 들어가니 조조의 개 버찌가 인사를 하고 부엌에 들어서니 먼저 와 있는 친구들과 조조 뒤에 숨어 있는 조조의 또 다른 멍멍이 친구 반반이(반반 FC의 숨은 마스코트)가 숨어 있다. 강아지들이 나를 보고 짖지 않는 것을 보고, 심지어 숨어있던 반반이가 나를 보고 슬그머니 나오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신기해했다. 그래도 몇 번 보았다고 아는 체를 하는 건지, 아니면 지난번 H네 갔을 때도 그렇고 내가 동물들이 좋아하는 어떤 특이점이 있는 건지 아무튼 동물들 앞에서 내가 자주 스타가 되는 느낌이 들어 괜히 혼자 기세가 등등해졌다.
조조가 차려준 담백하고 건강한 비건 음식들을 먹으며 나는 자꾸 두리번두리번 집을 보게 되었다. 그런 나를 보고 비빔이 물었다.
“오랜만에 왔나 봐요.”
나는 조금 머쓱해하며 “아, 맞아요. 오랜만에 오니까 볼게 많네.” 하며 두리번거리는 것을 멈추고 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차와 후식을 먹는데 나는 또 이런 질문을 쏟아 냈다.
“조조, 이 집 살게 된 지가 올해로 2년째 인가요?”
“비빔은 새로 산 집 지낼만해요?”
“민코치님은 아직 같은 집에 살고 계신 거예요?”
“짱돌은 전에 J가 살던 집에 사는 건가? 거기는 혼자 살기 진짜 좋죠?”
이런 나를 보고 조조가 웃으며 말했다.
“언니, 지금 집 인터뷰 하는 거예요? 관심사가 집으로 완전 가득 차있네.”
나는 또 머쓱해하며 허허 웃고 말았지만 사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 보다도 친구들의 집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단순히 건물이나 구조, 건축 양식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친구들이 어떤 모습으로 집을 가꾸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집 설계를 시작하고 처음 다른 사람들의 집을 구경하러 다닐 때는 집을 짓는 사람의 입장에서 집의 형태라던가 구조, 자제, 마감 방식 등 집을 짓는 과정을 상상하곤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상상하게 된다.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이나 사진, 조명의 위치나 색, 듣고 있는 음악,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책과 차의 종류 같은 것들을 보며 집에서의 시간을 누리고 있을 사람들의 모습.
사실 조조네 집에 들어와 너무나 티 나게 두리번거리게 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는데 그것은 조조가 이 집에 살기 전에 살던 사람들이 또 다른 나의 친구 B와 H의 신혼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 집에 친구 부부와 고양이 두 마리, 배 속에 아기까지 다섯 생명체가 살던 곳이었다. 고양이들과 아이를 맞이하던 친구들의 집이 강아지들과 그림을 그리며 사는 조조의 집이 되었다. 이곳저곳 친구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 집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집이 사람을 닮고, 사람이 집을 닮았네.’ 지난 연휴에 이웃들의 집을 둘러보며 든 생각이다. 여러 이웃의 손을 거쳐 가구를 만들고 최소한의 규모와 에너지를 사용하여 알맞게 살아가려 애쓰는 G선생님의 집. 손잡이 하나, 스위치 하나, 타일 하나에도 취향이, 세탁기가 들어갈 자리까지 치밀하게 계산하여 자신들의 이상을 최대한 구연해 낸 H와 J의 집. ‘결국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다양한 시도와 구석구석 흥미로운 공간으로 가득했던 S와 제이콥의 집. 모두 다 각각의 모습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을 닮은 집이었다.(심지어 G선생님의 집과 H&J의 집은 같은 사람이 지은 집인데, 아주 비슷한 겉모습에 비해 그 안은 매우 다른 모습이다)
올해 초, 처음 땅을 사고 집을 짓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덜컥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왕 지을 거, 어차피 살게 될 거 더 서둘렀다면 좋았을 텐데 하고. 하지만 이웃들의 집을 둘러보고 본격적으로 집 설계를 시작하니 우리는 분명 지금이어서 가능한 집을 짓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것은 우리가 여러 집을 거치고, 함께 보낸 시간을 거쳐 알게 된 필요와 불필요, 취향과 삶의 가치 같은 것들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이야기와 음식으로 배를 가득 채우고 나오는데 조조가 말했다.
“나도 준비하면서 재밌었어요. 오랜만에 집도 깨끗하게 치우고.”
친구들은 함께 웃었고, 나는 이때다 싶어 사심을 드러냈다.
“그럼 다음으로 집 치울 사람은 누구인가요?”
신나게 웃고 있던 친구들이 손을 입에 대고 조용히 뒷걸음질 치며 대문 밖으로 하나 둘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음 모임은 어느 집으로 가게 될지, 모임이 이어지긴 할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 헤어졌다. 나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며 친구들을 닮아 있을 집의 모습을 상상했다. 떠나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동물친구들의 얼굴을 보니 녀석들도 함께 사는 친구들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결국 애정을 주는 것들은 닮을 수밖에 없지, 하고 생각하며 나도 아쉬움의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아무래도 다음 모임은 우리 집을 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