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 한글날, 갑자기 생긴 국군의 날까지 연달아 연휴가 핑퐁을 했다. 우리는 이때다 싶어 궁금했던 이웃들의 집을 둘러볼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동네에 집 짓고 사는 사람들이 꽤 여럿 있어 계획을 짜기는 수월했다.
가장 먼저 전화를 한 곳은 G선생님 댁이었다. 꼭 귀농이 아니어도 귀촌을 했다면 한 번씩 집 앞에 작은 텃밭을 꿈꾸기 마련이다. 나는 12년째 약소하게나마 자급할 수 있는 나만의 텃밭을 꿈을 꾸고 12년째 실패 중이다. 사람이 10년 넘게 변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있구나,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내가 텃밭을 대하는 마음이다. 봄이 되면 한결같이 잘해보겠다 다짐하고, 언제나 장마와 함께 포기한다. 집에 따라 옥상텃밭, 베란다 텃밭, 퍼머컬쳐 텃밭 등 여러 시도와 도전, 나름의 철학 등이 있었는데 홍성에 와서 자연농을 하시는 G선생님을 뵙고 난 이후에는 자연농에 흠뻑 빠졌더랬다. ‘무제초, 무경운, 무비료’의 원칙으로 농사를 짓는 농법. 나는 이것을 ‘몸으로 짓는 농사’라고 이름 붙여 주었다. 그러고는 언젠가 마을 친구들과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와 창작물을 소재로 잡지를 만들었는데, ‘몸’이라는 주제로 G선생님 인터뷰를 했었다. 그때 나는 G선생님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준비할 것이 많지 않았다. 선생님은 언제나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고 그것을 누구와도 나눌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 예상했던 바와 같이 선생님과의 대화는 오늘 아침 먹은 커피의 출처부터 유기농업의 역사와 삶의 근본적인 이유까지 이야기가 흘러갔다. 선생님 말마따나 ‘몸’이라는 주제로 만났지만 ‘몸’ 빼고 다 이야기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지만 (…)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몸무게에 비해 묵직한 사상을 안고 살아가는 선생님의 다음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G선생님이 수다와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자연스레 가장 먼저 연락을 하게 됐다. 무엇보다 선생님 집이 우리가 눈여겨보고 있는 지역에 패시브하우스 장인 권 빌더님과 내 친구 빌궁이 함께 지은 집이었기 때문에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G선생님이라면 이 집에 대해 누구보다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두 번째로 연락한 집은 G선생님과 같은 곳(패시브 장인+내 친구 빌궁)에서 집을 지은 H와 J의 집이었다. 젊은 부부인 두 사람은 농사를 배우러 홍성에 와서 만나게 되었고 일찍이 결혼을 했다고 알고 있다. 두 사람의 집은 비교적 최근에 지은 집이기도 하고 꼼꼼하고 섬세한 두 사람의 취향과 디자인 센스가 흠씬 묻어 있는 집이라고 이미 소문이 자자했다. 특히 남편은 이 집을 한창 짓고 있을 때 이 집 앞에 난 길로 출근을 했기 때문에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매일 보아 온 터라 더 궁금해했다.
사실 나는 집만큼이나 H를 만나고 싶었다. H가 사진작가라는 점과, 그 사진들이 주로 변방의 이야기라는 점, 언제나 우정과 사랑에 닿아 있다는 점, 그리고 가끔 H가 책 정리를 하며 내놓는 책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덕분에 득탬을 많이 했다) 같은 것들에 마음이 자주 기울었다. 거기에 내 책 <시골, 여자, 축구>가 나올 즈음 우연히 마을에서 또 다른 두 권의 책이 함께 출간되었는데 그중 한 권이었던 <벼의 일 년>을 함께 펴냈다고 하여 여러모로 궁금하고 알고 싶었던 것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 집을 짓기로 결정했을 때 대뜸 H에게 집 구경 가도 되냐고 DM을 보냈다. 혼자 가고 싶었으므로 구체적으로 평일 낮에 시간이 가능한지도 함께 물었다. 문자가 아닌 DM을 보낸 이유는 평소 자주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는 아니어서 조금 쑥스러웠던 것도 있고 그래도 SNS 안에서 서로가 주고받던 하트가 마치 큐피드 화살 같았았어서, 갑작스러운 방문 요청이 너무 무례하게 느껴지진 않을 것 같다는 기분에서였다.
그날은 내가 H의 집에 처음 방문한 날이자 처음으로 마주 보고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눈 날이었다. 우리는 종종 마을에서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 때로는 궁금한 표정을 지었지만 만나서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성사된 첫 만남은 본의 아니게 매우 짧고 굵게 끝났다. H의 집에는 짧지만 강해 보이는 강아지 한 마리와 나이 든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다. 강아지가 낯을 많이 가려 크게 짖을 수 있다고 걱정을 하였는데 어째서인지 나를 너무 좋아했다. 일생에 멍멍이 혓바닥을 가장 많이 느껴 본 날이었다. 약간 스타가 된 느낌에 조금 우쭐했고, (조금만 더 있었으면 나를 따라올 수도 있었을 거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우쭐한 마음으로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핸드폰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큰아이 선생님 번호가 떴다. 번호를 보자마자 불현듯 그날이 학부모 상담 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정신없이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그래서 별 수 없게 생각보다 짧은 시간을 보냈고, 그렇지만 굵직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락을 나눈 집은 S와 제이콥 부부의 집이었다.(제이콥은 완전한 한국 사람이고 버젓이 한국 이름이 있으며 앞으로 계속 한국에서 살 가능성이 높지만 나는 그 와의 어색한 관계를 좁히기 위해 제이콥이라고 부른다. 그가 미국에 살던 시절의 이름이다.) S와 처음 알게 된 것은 언제였을까.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몇 번의 만남 이후 나와 같은 나이에 같은 성씨라는 이유를 알게 되어 속으로 두 발짝 먼저 친해진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금세 친구가 되었고 작고 소박한 모임을 종종 해왔다. 당시 S의 연인이었던 제이콥은 무뚝뚝함과 센치함으로 무장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순수함과 다정함을 가지고 있어서 필요 한 곳에 꼭 나타나는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잘 놀려먹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서로를 놀려 먹기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던 시기가 있었다. S와 제이콥, 그리고 우리 부부를 포함하여 또 다른 부부와 몇몇 친구 등 여럿이 자주 모여 놀았다. 아이가 있는 집은 우리뿐이라 주로 우리 집에서 모였다. 아이들이 자기 전까지 1층에서 놀다가 아이들이 잘 시간이 되면 다 같이 집에 가는 척하며 인사를 하고 바깥 계단을 통해 2층에 몰래 잠입하여(그때는 아이들이 어려서 잘 속았다)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셨던 것이 두고두고 추억으로 남아 있다.
S와 제이콥의 집은 몇 해 전 마을에 건축설계사무소를 차린 젊은 건축가와 함께 지은 집이었다. 그래서인지 외관부터 생김새가 남달랐다. 처음 집을 짓고 얼마 안 되어서 집들이를 갔는데 들어가자마자 이 집 참 특이하네, 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보기에 재밌고 특이했던 점이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보이는지, 실제로 어떤 쓰임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외에 집짓기 과정에 대한 실질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게다가 못 본 사이 예비 엄마 아빠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어 볼록 튀어나와 있을 S의 배와, 아빠가 된 제이콥의 모습이 몹시 궁금했다.
집 구경하고 온 이야기를 적으려다 시작한 이웃 소개만으로 벌써 오늘 분량이 가득 찼다. 오늘의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두 가지에 안심했다. 자연스레 다음에 쓸 글의 주제가 정해 졌다는 것(본격적인 이웃집 이야기)과 어쨌든 이번주도 글을 썼다는 것에. 어쩌다 보니 집의 완공은 더욱 미뤄져서 약 1년 남짓 남은 상황인데. 앞으로 어떤 이변이 생기지 않는 이상 빨리 지어질 가능성 보다 늦게 지어질 가능성이 더욱 높기 때문에… 이 연재가 어떻게 흘러갈지, 우리 집을 짓는 일도 어떻게 진행될지 자꾸만 미궁 속으로 빠지는 기분이 든다. 요즘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전하는 대부분의 인사는 “집 짓는 얘기 잘 보고 있어요.”와 “다 지으면 놀러 갈게요.”인데 그 관심에 감사하다가도 너무 먼 이야기를 지레 시작한 것 같아 조금 민망해진다.
어쨌거나 쉬는 날 갑작스러운 방문을 요청에도, 집을 둘러보고 나오면서도, 언제든지 놀러 오라고,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하는 이웃들이 있어 미궁 속에서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이제는 집을 짓는 사람의 마음으로, 우리가 집을 지으며 갖게 된 마음을 고스란히 지나왔을 이웃들의 모습이 궁금해서 안으로 들어가 본다. 그렇게 찾아간 이웃들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