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이어지면서 바쁘고 아픈 한 주를 보냈다. 올해 꼬박이들(우리 집 삼 형제를 총칭하는 별명)의 면역 체계가 완전히 무너 졌는지, 아니면 크려고 하는 일련의 과정 중 바이러스 침입을 무작위로 받고 있는 건지. 몇 년간 병치레 한 번 없이 잘 지내던 아이들이 몇 개월째 릴레이로 아프고 있다. 하나 아프면 다른 하나가 아프고, 하나의 질병이 끝나면 다른 질병이 시작되어 집이 온통 바이러스 소굴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결국 우리 집 건강의 상징인 나까지 컨디션이 영 안 좋더니(축구를 못 갔다) 결국 엊그제 새벽부터 오한과 발열로 정신 못 차게 아팠다. 겨우 동네의원 가서 항생제 등등 약 털어먹고 자다 깨다 반복하고 다음날 조금 살아났는데 회복을 파악할 새도 없이 꼬박이들이랑 서울에 다녀왔다. 상암에서 라디오 녹음 하고, 성수동 가서 브런치북 팝업스토어 갔다 돌아와서 정신없이 뻗어 자고 일어나니 수요일 아침. 어째서 일주일의 반이 지나가 버린 건지 비몽사몽 헤롱헤롱 하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남편이 말했다.
“오늘, 우리 땅에 가보자.”
언젠가 절친 목수가 우리가 집을 짓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 땅에서 하루를 온전히 보내 봐야 해. 해가 뜨는 시간부터 해가 지는 시간까지. 그래서 어느 쪽으로 해가 들고 지는지, 어느 시간에 어디쯤이 가장 예쁜지를 봐. 계절마다 가면 좋고. 자주 가서 보면 더 좋고.”
우리는 그의 말에 크게 감명을 받아 자주는 아니더라도 계절에 한 번은 그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먹은 뒤 처음 맞이하게 된 계절이 하필이면 올해 여름이었다. 올여름은 유난히 덥고 습해서 도저히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심지어 장마 한 번 지나고 나니 풀들이 내 몸에 절반만큼 커버려서 땅을 집어삼켰다. 집 앞마당에 수영장 설치 하기도 힘들어서 못 한 마당에 하루종일 풀밭 위에 앉아 있는다? ...생각 만으로도 끔찍했기 때문에 결국 여름은 실패. 날이 추워지기만을 기다리는데 가을은 점점 더디 오고 이러다 겨울 돼야 가겠네, 하고 푸념하는 사이 얼마 전 우연히 근처를 지나는 일이 생겼다. 혹시 몰라 들렀더니 기세등등했던 풀들이 기가 죽어 이 정도면 한번 올 수 있겠다 생각했던 참이었다. 집 설계를 하며 그리고 엎고 다시 그리고를 반복하고 있는 남편 역시 이제는 정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마침 날씨도 좋고, 이제는 어디 가자고 하면 이유부터 따져 묻는 아이들도 좋다고 하고, 나도 가서 글감도 좀 얻고 오면 되겠다는 생각에 다들 신이 났다. 비록 차로 15분 거리 가는데도 바리바리 짐을 싸다가 가네 마네 하며 한바탕 싸울 뻔했지만 다섯 식구 무사히 집 터에 도착했다.
풀은 기세가 꺾였어도 모기의 기세는 여전하여 재빨리 전 주인이 지어 놓은 거대한 하우스 안에 원터치 텐트를 쳤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바리바리 짐가방 속에서 만화책과 그리기 도구를 꺼내 일렬로 눕고 나는 아이들 발 밑에 앉아 챙겨 온 간식을 아이들 입에 넣어 주었다. 남편은 모기에도 굴하지 않고 텐트 밖에 1인용 책상과 의자를 꺼내 자기 자리를 만들고 풀숲이 된 집 터 이곳저곳을 지나다니며 사진을 찍고 가만히 생각도 하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지기 시작했다. 날씨는 적당히 선선하고, 모기로부터 안전한 텐트 안에서의 시간이 꽤나 쾌적하고 평화로웠다. 각자 나름대로 이 시간을 즐기는 가족들의 모습이 좋아 나는 한참 구경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일 연재를 해야 한다는 사실과, 언젠가 남편이 ‘집에 대해 아이들 인터뷰해 보는 건 어때?’라고 해준 말이 떠올라 부랴부랴 노트를 꺼내려는데 아이들이 싸우기 시작한다.
“엄마! 이음이가 물감 안 빌려줘!” “엄마! 형이 자꾸 방해해.” 엄마! 여기 모기 물렸어!”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소리다. 결국 꺼내려는 노트를 다시 집어넣고 아이들과 나는 먼저 나왔다. 돌아가는 길에 운동장에 들러 축구 한판 신나게 뛰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들에게 슬쩍 언지를 했다.
“얘들아, 엄마가 너네 인터뷰하고 싶은데 해 줄 수 있겠어?”
얼마 전 라디오 인터뷰에 깜짝 게스트로 출연한 이음이가 먼저 관심을 갖는다.
“무슨 인터뷰?”
“엄마가 요즘 집 짓는 얘기 쓰고 있거든. 집짓기 전에 너희한테 궁금한 거를 물어보는 거지.”
정확한 의사 전달이 중요한 울림이는 진행 방법에 대해 묻는다.
“근데 따로따로 하는 거지?”
“그게 좋으려나?”
“그게 좋지. 아니면 다 따라 하고 싸우고 그럴걸?”
“그러네. 오케이, 그럼 한 명씩 하는 걸로.”
조용히 앉아 있는 막내 ‘우리’에게도 확실한 합의를 얻기 위해 물었다.
“‘우리’도 하는 거지?”
“형아들 하면 나도 하고.”
집으로 돌아와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뽀송뽀송해진 얼굴로 마주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황울림(13세) 인터뷰
Q. 황울림 어린이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 홍동초등학교 6학년 2반. 싫어하는 것은 일정이 바뀌는 것. 좋아하는 것은 해야 할 일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거요.
Q. 처음 우리 집을 짓는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 좋았죠.
Q. 기대되는 점과 아쉬운 점이 있나요?
- 아쉬운 점은 이 집 주변 풍경이나 환경이나 경치 같은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 이 동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좋았는데 여길 떠난 다니까 아쉬워요. 기대되는 점은 방이 생기는 거랑, 친한 친구네랑 근처라는 거요. 어쨌든 새 집이니까 기대되죠. 패시브 하우스로 짓는 거랑, (그래서) 벌레가 안 들어올 거 같은 것도 기대돼요. … 안 들어오는 거 맞겠죠?
Q. 집 지을 때 바라는 점이 있나요?
- 벌레가 안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밟으면 너무 기분이 안 좋고 벌이나 뱀이나 지네 같은 건 무섭거든요. 그리고 전구 빛 보다 자연광이 많이 들어오는 집이면 좋겠어요.
Q. 지금까지 봤던 집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집이 있나요?
- 승태삼촌네는 테라스가 있어서 신기했어요. 정우삼촌네는 집은 작은데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느낌. 시원이네는 마당이 좋았어요. 엄청 넓진 않은데 간단히 놀 수 있을 정도는 됐거든요. 그리고 수호네는 마당이랑 다락이 넓어서 좋았고 지민이 이모네는 천창이 좋았어요. 지민이 이모네는 전구 빛 보다 자연광이 잘 드는 집이라고 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Q. 울림이 방에 뭐가 있으면 좋겠나요?
- 창문이 넓었으면 좋겠고 책꽂이랑 수납장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벌레가 안 들어왔으면 좋겠고요. 혼자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방음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Q. (아빠 공통질문) 심고 싶은 나무가 있나요?
- 포도 같이 잘 자라는 과일나무요. 그런 게 아니라면 벌레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것 같아요. 잔디를 심고 싶어요. 박하 같은 모기가 싫어하는 향이 나는 풀도 필요해요. 창가에는 다육이를 키우고 싶어요. 벌레 쫓을 수 있는 거면 더 좋고 공기 청정효과 있는 거나 관심을 많이 안 줘도 혼자 잘 크는 애들이요.
Q. 최근 학교에서 꿈을 적는 칸에 ‘건축설계사’를 쓴 이유가 무엇인가요? 정말인가요?
- 잘하는 거랑 연관되는 거 쓰라고 했는데, 잘하는 게 잘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곧 집 짓기도 하고, 집 같은 거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계산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썼어요. 근데 아빠처럼 하면 스트레스받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뭐.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요?
- 앞으로 생길 방이 기대 돼요.
Q. 열심히 설계하고 있는 아빠에게 응원 한마디.
- 고마워요.
황이음(10세) 인터뷰
Q. 황이음 어린이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 홍동초등학교 3학년 1반 황이음입니다. 초롱산에 살고 있고요. 좋아하는 것은 가족, 피아노, 클라이밍 축구입니다.
Q. 처음 우리 집을 짓는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 이사는 4살 때? 그때 해보긴 했지만 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게 신기했어요. 처음에는 아랫집 할아버지네 윗 밭 있는데 거기 산다고 했는데 문당리로 가서 처음에는 좀 아쉬웠는데 거기도 좋을 것 같아요.
Q. 기대되는 점과 아쉬운 점이 있나요?
- 아쉬운 점은 아랫집 할아버지를 많이 못 만날까 봐. 여기 있으면 할아버지랑 더 친해질 텐데. 그리고 여기는 산 안에 이렇게 들어와 있어서 자연과 더 가깝고 새소리도 많이 들을 수 있거든요. 기대되는 점은 학교랑 가까워서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기대돼요. 그리고 봄들이랑 학교에서는 말을 잘 안 하는데 집이 가까워지면 더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여기서는 사고가 몇 번 났었는데 거기 살면 사고 날 위험이 적어질 것 같아요.
Q. 새로운 집이 생기면 가장 기대되는 공간은 어디 인가요?
- 당연히 제 방이죠. 제방. 가족들 다 각자 방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다음에는요 잔디밭같이 밖에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축구를 하고 싶나요?) 네.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번에 아빠가 그림 그릴 때 보여줬는데 그때 거실에 다리랑 그 다리에 창문 두 개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거실이 되게 기대 됐어요. 근데 바뀔 수도 있어요. 대신 다른 걸 더 기대해 봐야죠.
Q. 이음이 방에 뭐가 있으면 좋겠나요?
- 피아노가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혼자 있고 싶은 시간에 혼자 있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Q. 지금까지 봤던 집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집이 있나요?
- 정우삼촌네 집이 기억에 남아요. 분위기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카페 같은 분위기였거든요. 글 쓰고 그러면 너무 좋을 것 같고… 그리고 부엌! 거기가 창문 같은 걸로 막혀 있으니까 디자인이 좋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수호네도 좋았어요. 다락이 크게 느껴져서 좋았고, 복도와 거실 사이에 뻥 뚫려 있는 네모 창틀 같은 게 있었는데 우리도 그런 거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처음 패시브 하우스 알았을 때는 엄마 아빠가 패시브 하우스에 대해 엄청나게 좋은 것만 얘기해서 저도 그냥 엄청나게 좋은 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직접 가보니까 그럴만했어요. 일단 쾌적하고 집에 틈이 없어서 좋았어요. 우리 집은 통나무집이라서 너무 복잡하게 되어 있거든요. 깔끔한 벽이 보여서 좋았어요.
Q. (아빠 공통질문) 심고 싶은 나무가 있나요?
- 층층나무요. 나무 타기가 딱 좋아요. 낮은 가지가 넓게 층층으로 자라서 앉아서 책 보기도 좋고. 그냥 딱 좋아.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요?
- 큰 책장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난번에 바람언덕에 갔을 때 엄청 큰 책장이 있는 집을 봤는데 그 책장이 엄청 멋있었거든요. 그리고 우리 집에 책이 엄청 많으니까 우리도 그렇게 만들면 멋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 고무나무처럼 큰 식물도 많이 키우면 좋을 것 같아요. 아, 음악 공간도!
Q. 열심히 설계하고 있는 아빠에게 응원 한마디.
- 더 힘내서 우리 집을 멋있게 지어줬으면 좋겠고 아빠 공간도 만드세요. 힘내세용
황우리(7세) 인터뷰
Q. 황우리 어린이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 황우리요. 좋아하는 거는 엄마랑, 그림 그리는 거랑, 자전거 타는 거랑, 배드민턴 치는 거랑, 아랫집 할아버지.
Q. 처음 우리 집을 짓는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했어요. 안 좋은 점은, 이사 가기 싫은 건데. 이 집에 오래 살아서 이 집에 뭐가 있고 이런 거를 잘 알잖아. 그리고 아랫집도 친하구. 그래서 아랫집에 맨날 놀러 갈 수도 있어. 그래서 여기가 좋다는 거야. 좋은 점은 생각을 안 해 봤는데... 아 있어! ‘우리’ 방 생기는 거.
Q. 우리 방에 뭐가 있으면 좋겠나요?
- 컴퓨터-주말에 만화 볼 때, 핸드폰-주말에 게임할 때(게임 못하는데 왜 필요하죠?/1학년 때 할 수 있잖아요. 엄마, 근데 나도 이제 게임하고 싶어. 태윤이, 반들이, 이음이형 모두 7살 때부터 했잖아. 응? 응?/그건 가족회의 때 이야기 해봅시다. 지금은 질문에 계속 답해 주세요) 책, 그리고 이면지-그림 그리게, 그리고 스케치북, 물감, 붓도, 연필도, 침대도 넣어야 되고, 창문, 비밀통로, 장난감. 이렇게요.
Q. 지금까지 봤던 집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집이 있나요?
- 반들이네 집. 비밀통로가 좋았어. 그리고 거기서 엄청 재밌었던 점이 있었어요. 반들이네 집에서 밤에 놀 때였는데. 뭘 하고 놀았냐면, 바람 나오는 게 있었거든요? 그걸로 밤에 술래잡기를 했는데 거기 안에 풀을 넣어서 그 풀을 맞으면 술래가 되는 놀이었어요. 치킨도 맛있었고.
Q. 나중에 집 지으면 반들이네 집이랑도 가까워지니까 좋겠네요?
- 근데 반들이도 이 집이 좋대. 나도 지금 사는 데가 좋고.
Q. 이 집이 좋은 이유가 뭔가요?
- 오래 살아봤으니까. 불편하더라도, 근데도 이 집이 좋아. 마지막으로 이 집에 우리 가족이 살고 있고 특히 엄마가 살고 있잖아.
Q. (아빠 공통질문) 심고 싶은 나무가 있나요?
- 나무? 많은데 좀. 샤인머스캣, 딸기, 수박, (딸기랑 수박은 나무 아닌데요?/나무 아닌 것도 돼/넵…) 오이, 생선나무, 귤나무… 또 뭐 있지. 더 생각나면 이따 와서 말할게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요?
- 네. ‘우리’ 방에 밤이랑 칼도 필요하고요, 밤나무 심는 것도 필요해요.
Q. 열심히 설계하고 있는 아빠에게 응원 한마디.
- 엄마, 사랑해!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인데요?) 흠... 잠깐만 기억해 볼게. 아빠, 그림 멋져!
- 이제 끝났어요. 가도 됩니다.
- 엄마, 빨리 끝내고 싶어서 그래?
- 그런 건 아닌데 네가 할 말이 없어 보여서.
- 맞아, 사실. 그럼 나 갈게.
인터뷰를 하며 생각했다. '그래, 이 녀석들이 이런 녀석들이었지. 이렇게나 다른 아이들이었지.' 각자의 개성이 뚝뚝 묻어나는 아이들의 답변에 웃음이 났다.
계절이 바뀌고, 바이러스가 가득했던 집의 온기도 바뀌고, 그 안에서 자라나는 아이들도 변화해 간다. 우리는 또 이곳에서, 새롭게 살아갈 터전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쌓아가고 있을 것이다. 집을 다 짓고 나면 아이들은 또 어떤 이야기를 할까. 그때 아이들의 얼굴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때 다시 얼굴을 마주 보고 질문을 해야겠다. 빈 터에는 텐트와 책상과 의자를 두고 왔다. 이제는 완연한 가을이 왔으니 여름의 몫까지 가볼 계획을 한다. 벌써부터 우리의 추억이 쌓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