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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부기 아빠 Oct 14. 2022

아내를 위한 주전부리 - 밤 버터구이

이 밤의 끝을 잡고, 밤 버터구이

(2022년 10월 12일 주전부리)


  지난 주말 부모님 댁에 다녀왔다. 집에 올 때면 항상 두 손 가득히 이것저것 챙겨주시는데, 이번에는 친척분이 보내주신 밤을 쪄서 한가득 주셨다. 밤알이 어찌도 실한 지 어떤 것은 주먹 반만 한 것도 있었다.

  나는 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까먹는 것이 귀찮아 잘 안 먹는 편이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귀찮음보다 밤을 먹는 것을 더 좋아하는지 종종 밤을 쪄서 먹곤 했다. 그리고 그 귀한 '직접 깐 밤'을 한 움큼씩 주기도 했다.


  내일은 퇴근 후 회사 행사가 있어 늦게 퇴근할 예정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 가급적 퇴근 후 모임은 생기지 않도록 하였지만 내일은 조금 특별한 일정이라 아내에게 지난주 미리 허락을 받아두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늦게 오면 아내가 더 고생하게 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퇴근 후 집안일은 적절하게 배분이 되어있는데, 아이 저녁을 준비하고 먹이는 것은 아내가 담당하고, 나는 식사를 마친 아이를 씻기고 설거지를 한다. 물론 그 사이쯤 되는 시간에 아이가 신나게 먹은 흔적을 치우고 우리 둘의 저녁도 준비해서 먹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둘 중 한 명이 빠지게 되면 그 균형이 무너져, 일정 부분을 포기하거나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식사 준비 대신 배달음식을 먹는다거나, 미리 저녁을 준비한다거나 하는 등 저녁시간 일정이 꽤나 버거운 일정이 되게 된다.

  

  그래서 아내가 잠든 이 시각, 내일 힘들 아내를 위해 아내가 좋아하는 밤 간식을 만들어보려 한다. 사실 특별히 조리한다기보다는 밤 까먹는 귀찮음을 덜어주려 미리 까놓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재료 준비>

- 밤

- 버터

- 소금






<시작>

0) 분명 예전에 유튜브에서 '밤 쉽게 까는 법'을 본 것 같긴 한데, 대부분은 삶기 전에 칼집을 내놓거나 미리 찬물에 담가놓거나 하는 작업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찐' 밤에서 시작해야 하는 핸디캡으로 이 늦은 시각의 작업을 시작한다.


1) 역시나 칼로 1개를 까 보았는데... 스톱워치를 켜지는 않았지만 체감상 대략 5분쯤 걸린 것 같다. 이런 방식이면 밤을 새도 안될 것 같았다.



2) 기억을 더듬어... 밤의 밑동에 칼집을 내고 프라이팬에 구우면 수분이 날아가면서 잘 까질 것 같은 기억? 혹은 생각이 났다. 손을 베지 않게 조심해서 십자가 모양으로 칼집을 낸다.



2-1) 있는 밤 전부에 칼집을 내는 것도 일이다....



3) 프라이팬을 적당히 예열하고 칼집 낸 밤 투하!



3-1) 조금 시간이 지나니 밤들이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사실 쩍쩍 소리는 마음의 소리였던 것 같다. 그렇게 크지 않은 소리였다) 잘 갈라진 밤들을 쟁반에 다시 옮겨 담는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 밤을 까다 보니 이렇게 애벌레도 나왔다. '이 밤들은 맛있다'라는 증표 같았다.



4) 다행히 굽기 전보다는 5~10배 정도 빠르게 까진 것 같다. 그래도 다 까고 나니 새벽 1시가 넘었다^^.



5) 이왕 늦은 거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깐 밤 중 크기가 작은 것들은 '단짠 버터구이 밤'을 만들어 보려 한다.



5-1) 프라이팬에 버터를 조금 두르고 녹인다.



5-2) 밤들이 버터에 잘 적셔지도록 하지만 부스러지지는 않도록 잘 볶아준다. 그리고 소금도 살짝 뿌려준다.



6) 깐 밤 & 단짠 버터구이 밤 완성!

깐 밤은 대략 200 g, 버터구이 밤은 150 g 정도 나왔다.




*느낀 점

- 깐 밤은 고소하게 맛있었다.


- 단짠 버터구이 밤은... 정말 맛있었다!!!! 남은 밤마저도 모두 버터구이를 하고 싶었으나, 아이도 먹어야 하기에 참았다. 버터와 소금 조금이 밤을 이렇게 맛있게 만들 수 있다니 정말 신기했다. 매우 피곤해졌지만 너무 맛있는 간식이 만들어져서 너무 뿌듯하다. 내일 이 간식을 먹고 미간을 찡그리며 입꼬리가 올라갈 아내가 상상이 되니 너무 뿌듯하다 ㅎㅎ



- 이 밤을 까며 어머니가 많이 생각났다.

생선가시 발라먹기 귀찮아하는 나를 위해 생선을 잘 발라주시던 어머니의 젓가락질,

밤 까먹기 귀찮아 하는 나를 위해 한바구니 밤을 까서 통에 담아두시던 그 손길이 생각났다.

이렇게 귀찮고 번거로운 일임에도 어머니는 그렇게 해주셨다. 그렇게 받은 사랑을 나도 아내와 아이에게 조금씩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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