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ya Fukumori Trio -The Light Suit
우리 교회 구십 살 할머니는 매일 볕을 받으러 나온다. 당뇨가 있어서 꼭 볕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교인들 중에 가장 볕과 날씨에 민감하다. 출근룩이나 일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볕을 받기 위해서다.
나는 자주 밤을 새운다. 낮보다 밤이 좋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빛이 필요하다. 내 또래들은 햇볕에 둔하다. 날씨를 잘 가늠하지 못하는 젊은이들과 날씨에 더 순전한 할머니, 할아버지들.
아이부터 노인까지, 그러나 우리는 모두 빛이 필요하다. 잇몸이 건강하기 위해서, 당뇨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오늘도 하루를 만났다는 확신을 위해서, 갸륵한 내 삶을 위해서, 그리고 세상을 위해서.
볕이 잘 들기 시작하면 언 땅 속에서 봄이 홍건 하게 녹는다. 그 빛은 무언가를 일으킨다. 가만히 있는 대지를 움직이고 식물을 움직이고 다소곳하게 제자리에서 피고 지는 초록 잎들을 움직인다. 그것을 먹으러 오는 동물들과 새들을 움직인다. 사람을 움직인다. 사람을 움직여서 이 세계를 움직인다. 이 빛은 세상을 일으킨다.
누군가의 빛은 모두의 빛이다. 나는 누군가의 빛이 절실하다. 어느 국가의 어느 지역에서는 빛이 절실하다. 그 빛은 누군가를 일으키고 세상을 일으키기 위한 빛이다. 누군가는 그 빛이 너무 절실하다. 그러나 모두 그 빛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 노인들은 한낮에 볕을 쪼이고 어두운 밤에 일찍 잠이 든다. 평온하고 느리게 빛을 품는다. 그러나 밤을 잊은 열정들은 그 빛을 찾지 못한다. 밤에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야만 하는가. 볕은 한낮에 온다. 평안과 평화가 오듯이 그렇게. 우리가 필요한 빛은 그러한 것이다. 구십 살 먹은 노인이 느릿느릿 동네 어귀를 산책하며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순하고 착한 빛.
모두의 빛은 공평하다. 공평하기를 원치 않는 자들은 신과 자연이 우리에게 공명정대하게 베푸는 순전한 빛에 배부르지 않다. 그것은 팔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팔 수 있는 빛을 만들어야 한다. 돈을 벌 수 있는 빛은 구십 먹은 할머니에게 가지 않는다. 아직 수입이 없는 어린아이에게 가지 않는다. 오로지 삶을 쓸 뿐인, 하루하루 살아갈 뿐인 생명에게 가지 못한다. 나는 그런 빛을 신봉하는 자들이 노인들의 옆에서 나란히 앉아 볕을 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야 후쿠모리의 음악을 들으며 느긋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흙 속의 계절이 녹아 축축하게 바지에 스며드는 것을 느끼면서.
드럼은 독일어로 Schlagzeug라고 한다. 때리는 것이다. 드럼은 늘 때려서 리듬을 만들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악기 중에 하나다. 하지만 신야 후쿠모리는 때려야 하는 물건으로 순하고 평온한 사운드를 만든다.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사소한 두드림, 소소한 빛처럼.
누군가의 빛, 나는 그것이 필요하다. 모두의 빛, 나는 그것이 절실하다. 때리는 물건으로 꼭 때리지 않아도 리듬이 만들어지고 모두에게 공평한 오후의 춘곤증을 줄 수 있다. 빛을 쬘 수 없다면, 거기, 춘곤증이라도 몰아치기를 바라는, 볕이 좋았던 삼월 삼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