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주운 생각들15 | 호랑말코씨

by Ggockdo






어제 저는 초록을 납치했습니다. 생태계에 대한 기획이 거절당한 것에 대한 복수였지요. 복수치고 소심해서 제 값도 매겼습니다. 만오천원. 저는 이름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호랑말코, 안녕?


만오천원짜리 호랑말코는 빛이 잘 들지 않는 내 방에 들어오는 걸 꺼려했지만 전혀 티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맹목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나에게 이미 질려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의 태생이 식물이라서 반항 한 번 할 수 없는 비극을 맞이했지요. 이제 그에게 남은 최후의 반항은 죽은 듯이 살거나, 죽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순순히 그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셈입니다.


호랑말코는 빛이 잘 들지 않아도 살아남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늘 식물을 과수분으로 죽이는 수속성 킬러인데, 호랑말코씨는 순순히 죽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5월까지 쭉 바쁠 거고, 물 주는 걸 잊어버릴 게 분명하죠. 가끔 엄마가 불 꺼진 방에 혼자 들어앉아 있는 호랑말코씨를 불쌍히 보고 가끔 베란다로 꺼내놓지 않으면 이제 호랑말코씨는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에요. 호라호락하지 않은 납치 사건의 전말은 이것입니다.


제 방의 커튼은 선인장 군락이고 이불은 몬스테라 군락이에요. 호랑말코씨가 얼마나 큰 위협에 발을 들인 건지 상상이나 가십니까? 그는 선인장의 기후와 몬스테라의 지대에 꼼짝없이 갇혔습니다.


사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나 한국의 사계절이란, 지나치게 기온차와 습도차가 깊고 넓어서 일년에도 옷장을 4번이나 정리해야 하고, 옷장을 정리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집안이 온통 먼지로 뒤범벅되어 신경질이 난단 말입니다. 그러면 계절에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다문채로 열심히 사는 초록에게 심술이 납니다. 저것을 들여 산소공급기로 부려먹겠다는 못된 생각이 저절로 들지요.


아무튼 이 호랑말코같은 호랑말코씨. 그것 참 안 되었습니다. 잘 살아보시지요. 삭막하고 변덕스러운 내 방에서, 유일하게 사랑스럽고 호랑말코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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