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주운 생각 14 |버튼식 삶

버튼을 거부하기

by Ggockdo



호텔의 조명 버튼이 여러 개다. 자동차시동과 기어변속도 버튼이다. 음식점 종업원 콜도 버튼이다. 모든 것이 버튼이다. 둥글고 볼록하고 누르면 결정되는 단순한 의사결정 장치. 어떤 강아지는 매우 똑똑해서 여러 개의 낱말 버튼을 눌러 의사를 표현하기도 한단다. 엄마, 밥, 엄마, 산책, 아프다. 버튼은 낱말이다.

하지만 사람인 나는 가끔 버튼 누르기가 어렵다. 버튼의 선택에 완벽하게 동조할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버튼은 매우 단호하고 그러나 단호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도록 둥글다. 나는 버튼의 그런 위선적인 태도가 매우 심기불편하다.


버튼식 삶은 참 편리하다. 키오스크도 버튼식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소통을 최소화하고 서술형 답안을 거부한다. Yes or No, 흑백논리는 매우 예쁜 버튼으로 만들어져서 죄책감 없이 우리의 선택을 강요한다 이것 아니면 저것의 선택지만 남는 것이 과연 좋은가?


편리함과 좋음, 편리함과 아름다움은 그다지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편리하기 위해서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불필요한 것들에 아름다움이 있다. 부스러기에 있다. 편리해서 좋은 것들도 물론 있다. 편리해야만 할 때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이 꼭 버튼식 삶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버튼식 삶은 사람을 하나의 버튼으로 만든다. 이것이고 저것이다. 이런 유형이다. 나는 E 유형이고 I유형이고 S이고 N이다. 몇 가지의 버튼을 눌러 나를 완성시킨다. 그것은 이력서나 경력증명서, 주민등록증보다 훨씬 편협하다. 적어도, 주민번호는 13자리고 십진법의 세계는 열 가지의 선택이 있다.

나는 버튼을 누르듯 선택된다. 오늘은 이 가게에서 배달을 시킨다. 그것도 버튼이다. 얼마짜리 메뉴를 고른다. 그 메뉴는 이미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도 버튼이다. 모든 선택은 다 버튼이 된다. 조금 더 따지고 들기 위해선 창구가 필요한데 그런 것은 아주 드물게 제공된다. 알레르기가 있다거나 시간이 촉박하다거나 하는 개인 사정은 모든 버튼에서 배제된다. 버튼식 삶은 내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인간을 고려하지 않는다.


버튼식 삶은 극단적으로 삶을 켜고 킨다. 버튼을 눌러 on off, on off 한다. 하지만 때때로 삶은 그렇게 반짝하고 켜지지고 꺼지지도 않는다. 그것이 두렵다. 버튼으로 켜지지 못하는 삶과 버튼으로 꺼지지 못하는 삶, 그리고 버튼이 삶의 이정표가 되는 것이 두렵다.


버튼은 고장 난다. 버튼이 고장 나면 버튼식 삶은 길을 잃는다. 누르면 올라오지 않거나 아예 눌러지지 않거나 버튼이 없어지기도 한다. 때때로 나, 라는 버튼은 그렇게 불능의 상태가 된다. 버튼으로 나를 보는 이들은 나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버튼이 아닌 자를 사랑한다. 이것이고 저것이고 고를 수 없는 자를 사랑한다. 단번에 결정할 수 없어서 오랜 시간 곁에 두고 고민해야 하는 이들을 사랑한다. 그것은 버튼 없는 삶이다. 버튼이 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다. 너는 좋니? 싫니? 대답하지 않는 자들이다. 너는 어떤 유형이니? 대답하지 않는 자들이다. 분류되지 않아서 기타 등등으로 있는 자들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버튼을 거부하면 번거로워지겠지. 하지만 나는 때때로 버튼을 고장내고 싶다. 버튼보다는 조금 더 복잡하고 번거로운 삶을 가지고 싶다. 정리되지 않고 정돈되지 못하는 삶. 버튼으로 만들어지지 못한 나를, 너를, 우리들의 부서진 키오스크 앞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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