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의 성향 바깥을 사랑하기로 했다.
한 사람을 사랑하기. 그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감정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발생한 것을 관찰하고 끊임없이 이해하는 일이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얼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사람은 사람을 이해하고 싶고 또 누군가 나를 이해해 주길 바란다. 나를 이해시키고 싶다. 이 욕망은 단순한 정보, 데이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데이터의 축적량이나 함께 보낸 시간의 총량, 취향의 교집합 부분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반면 새로운 정보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는 사람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성질을 한 번 정의해 버린 채로 관찰과 이해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 사랑하는 일은 늘 새로워지는 당신의 정보를 계속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당신이라는 옛 기종의 사랑으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오늘의 사랑을 시도하는 멍청이가 될 것이다.
이해하기를 방해하기. 그것은 늘 카테고리다. 유형화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의 성질을 유형화하고 빨리 이해시키기 위해 누군가 만든 선입견의 법칙을 따르는 일은 신물이 난다. 이해하기를 돕기 위해 만든 도구에 맞춰, 유리 구두를 신기 위해 뒤꿈치나 발가락을 자르게 되는 일은 아무래도 끔찍하다. 틀을 벗어나 특별한 사람이 되기보다 특별한 틀을 만들어 그 안에 앉아 있고 싶어 한다. 작은 박스에 몸을 우겨넣는 고양이가 되고 싶나 보다. 그리고 박스 안 쪽의 고양이만 고양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박스 안의 고양이만 사랑하려나 보다.
그러나 틀 바깥의 것을 스스로 퇴화시키는 상실은 모두 간과한다. 재미있는 돌출, 기계적이지 않은 순간들(베르그송!)은 늘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거기에 사람이 있고 인간이 있다. 그것을 감추거나 불필요한 것, 자연적으로 탈각되는 영역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은 비문명적 지성이다. 속으면 안 된다. 덕분에 나는 틀 안의 당신만을 사랑하다 슬퍼진다. 가끔은 내가 틀을 사랑하는지 당신을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다.
또, 쉽게 예를 들자면, 김모씨는 ㅇㅇ 성향이기 때문에 이모씨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으나 그건 성향 때문이라고 쉽게 자기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태, 이모씨는 ㅇㅇ 성향이기 때문에 김모씨의 행동패턴을 결코 바꿀 수 없다는 편견으로 누군가의 발전 가능성을 막는 행태, 혹은 ㅇㅇ 성향이기 때문에 ㅇㅇ 성향인 사람들과는 진지한 관계를 이룩하기 어렵다는 좁은 세계관의 행태.
말하자면, 서로에게 적잖은 당황과 상처를 베풀고 서로 이해와 사과를 통해 타인들의 세계를 더 넓혀가려는 노력을 멈추고 성향 탓을 운운하며 어쩔 수 없다고 하나 뿐인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성향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행태 같은 것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성향 바깥의 것들을 사랑하기로 했다. 이를 테면 아주 뜨겁고 불같은 성격의 바깥, 밀려나 있는 북풍지대에 흔들리는 풀잎이라던지, 계획적인 성격의 바깥에서 갑자기 싹텄다 이유도 모른 채 죽어버리는 나무 같은 것, 밝은 성격 바깥에서 움츠리고 있는 우울한 자아의 한쪽, 비관적인 성격 바깥에서 흥얼거리는 자아의 노랫가락 같은 것들.
어쩌면 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성향 바깥의 것으로 성향 안쪽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할지도 모른다. 나는 틀을 이해하고 틀 안의 당신을 사랑하기보다 바깥의 것을 받아들여 그것을 빌미로 틀 안쪽도 이해하고 싶다. 그래야만 비로소 한 존재를 시간과 정보의 양과 상관없이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이 당신을 바라보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그런 식의 이해는 냉정한 사회생활이나 행정상이나 어쩔 수 없는 역할론과 지위, 체면에서 충분히 이루어진다. 사랑은 그런 식의 이해가 아니다. 사랑은 바깥에 삐져나온 의외의 것을 남몰래 귀여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틀 바깥도 점점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다. 틀이 보이지 않을 만큼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다.
내가 만약 그런 것들을 사랑한다면 언젠가 당신도 그것들을 끌어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성향이 구분 짓지 못하는 국경 없는 당신의 넓은 마음속을 맘껏 탐구하고 타인과 나의 세계를 이을 수 있는 교통편을 끊임없이 개발하도록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메타 데이터로 감히 추출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세계가 좀 더 행복해질 것이다.
당신의 성향 바깥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으면서 탐험가의 마음으로 당신을 이해하기로 결심한다. 계속 살아가는 당신, 털이 자라고 발톱이 자라고 자그마한 점이 자라는 당신, 무의식으로 밀려난 당신, 그런 부분을 알아내고 이해하는 즐거움을 찾아내기로 한다. 당신의 성향 바깥을 사랑하는 일은, 새롭게 재미있다.
24. 03.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