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주운 생각들 2 | 산에는 꽃이 타네

타오르던 산이어도 산 타러 가야지

by Ggockdo


산에는 꽃이 타네


바다와 산, 어디로 쉬러 갈 거냐 하면 산으로 가자했다. 작은 바닷가 이층집에서 태어난 나는 비린내 없는 산이 좋다. 오징어잡이 배 불빛이 밤잠 이루지 못하는 동해 바다 컴컴한 파고 아래보다 하늘에 가까운 산이 좋다. 그 산들이 다 탄다. 봄꽃 이제 막 피어 오를 산이 바스라진다. 우리 산에 꽃이 탄다.


야생버섯 한 소쿠리 따다 고작 이만원에 팔던 슬레이트 지붕 무너진다. 산제비나비 양배추꽃 위에 앉아 쉬던 밭 다 뭉그러진다. 칡 캐어 팔던 평상 아래 닭이 어린 병아리 품던 산골 정자는 이제 숯이다. 우리 산 다 숯이다. 뭐가 그리 가빠서, 밤새서 다 타나, 산에 파묻혀 살던 생 죽는 소리 난다.


이 봄에 봄 오는 소리 타다닥 뜨거워 팔짝 뛴다. 갓 따다 무쳐먹던 나물 없이 봄이 어떻게 온단 말이냐.

진달래 꽃대 올리는 소리도 없이 어떻게 분홍을 배운단 말이냐.

산수유 울어 봄꽃으로 코 물들이던 사람은 노랑을 잃고 어떻게 여름으로 간단 말인가, 봄이 없어졌는데.

산 잃고 게절 잃고, 푸른 뱀 물길 끌어 오기도 전, 송사리부터 고목까지 골짜기 놀던 작은 생들 고스란히 다 바쳤으나 하늘은 감흥도 없다.


산에는 꽃이 탄다. 봄이 타고 계절이 길을 잃는다. 애진작에 길 잃은 사람, 또 걸음 멈춘다. 불이 산을 넘을 때 길 잃은 사람, 아득히 우주의 검은 입에 들어갔다. 망망한 하늘에 봄비 오미리, 찔끔거린 게 전부여도 그래도, 타오르던 산을 타며 올 여름엔 어디로 갈래, 물으면 산으로 가야겠다.


재 밟으면 산 타야지, 타버렸어도 산은 산이다. 사람이 꽃이 되어야지, 무슨 꽃씨라도 뿌리며 터덜 터덜 걸어 올라야겠다. 숯같이 검은 내 마음, 숨기러 가기 딱 좋겠다. 꽃이 탄 자리 닦으며 내 마음도 닦고 바다에 던지지 못했던 한숨도 기도와 함께 깊이 파 묻으러 가야겠다.


올 여름은 덥겠네, 산에는 꽃이 탔으니 짐승같은 마음 그을려 낑낑대고 연기 마셔 쉰 목소리로 메아리 울려주는 산을 가야겠다. 슬퍼서 우는 사람 다 산에서 울고 침 뱉는 사람 다 산에서 뱉고, 봄 홀랑 태워먹어 불꽃만 피던 산에 여름 싣고 뻘뻘 땀 흘려 검은 때 죽죽 벗겨내고, 우리 산 내년 봄엔 어린 잎이라도 깨어나면 같이 춤을 춰야겠다. 산과 바다, 어디로 갈거냐 하면, 바다에서 태어났으니 물길어다 산으로 간다 한다. 산에 꽃이 다 타도.


27.03.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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