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사소했다
'에이전시 일이 좋아요 서비스가 좋아요?'
'저는 둘다 상관없어요. 다 좋아요~'
'지금 에이전시쪽은 자리가 없고, 서비스기획쪽으로 오세요. 나랑 서비스 합시다. '
'네'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니 그렇게 '네'라고 대답하면, 난 바로 일을 시작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입사 심사를 위한 시작이었다.
나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은 따로 있었기에, 이것 저것 나의 자질을 시험하는 메일이 여러번 왔다 갔다 했다. 그저 평소 내 생각대로 이것 저것 구구절절 적어서 보내기를 일주일간 두어번 반복 했나보다. 내가 마지막 메일을 보낸후로 연락이 뚝 끊겼다.
이주정도 지났을까?
'부대표님 어찌되었나요? '
'여기 기획자 안 뽑기로 했어요. 그냥 내가 기획하는걸로'
'네...'
2014년 상반기에 나는 암웨이 프로젝트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프리랜서였지만, 3개월 후 다른 포지션으로 정직입사를 약속한 상태였다. 문맥으로 보면 마치 내가 정직 보장을 위해 3개월간 프리를 한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회사측에서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팀구성전까지 프리를 제안한 형태였다. 그게 3개월.
어마 어마한 금액의 프로젝트인만큼 투입인원도 많았다. 그런데 이게 들여다 보면 볼수록 이상한거다. 프리를 난생 처음 해보는 나로써는 황당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능하거나'
'약았거나'
'경력이 없는 초급이거나'
이랬다. 특히 기획팀에 그런 사람이 둘이 있었다.
나는 기획팀 문턱 낮게 보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혐오한다. 고객을 속이는 행위는 더더욱 혐오한다.
그리고 그들은 프리랜서인 나에게 제일 어려운 파트 기획을 담당해 두었고, 이미 갖고 있는 업무 마저도 나에게 약은 능력으로 넘겨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너무나도 쿨하게, 받아버렸다.
이렇게 3개월간의 프리가 시작되었고, 파란만장한 3개월을 5개월까지 연장해가면서 나는 이 무능한 조직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일 좀 한다 싶은 퍼블리싱팀의 팀장과 무능한 사람들 뒷담화나 해가며 하루 하루를 연명해 가고 있었을 뿐이다. 급기야 5개월을 마무리 하며 난 이 조직과 끝장을 내었는데(3명이 퇴사를 함), 우리가 나가고 난 뒤 프로젝트룸 벽에는 이런 포스트가 대문짝만하게 도배되었다고 한다.
'의리의리의리의리의리의리의리의리'
1. 프로젝트가 8개월짜리고, 기획자를 프리로 3개월을 계약했다면 그 다음은 기획PM이 인수인계 받을 대책을 갖고 있었어야 하는게 당연한것 아닌가? 그 대책 안세우고 뭐했을까?
2. 일잘하는건 내 능력인데, 일 잘하는 사람 나가는 책임을 내가 지는 이 희안한 구조는 도대체 무슨 구조일까?
그런 나에게 바로 옆 건물에 있다며, 전 직장에서 함께 일한 부대표는 자주 나를 불러내어 일얘기를 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언제 나올거에요?'라며 나를 재촉했다.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건 좋은 일이다. 왜 찾는지는 중요했다.
그 분은 만날때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왜 나와 함께 일하고 싶으신거에요?'
정확하게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종합해볼때 세가지 형태의 결론을 낼 수 있을것 같다.
'만만하니까'
'내 말을 잘 들을것 같아서'
'나이가 많으니까 어디 딴데 간단 소리 안 할거 아냐'
현재 기준으로 간간히 들어온 말을 종합한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 사람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렇게 적어두고 보니 참 되먹지 못한 사람 같다. 이 부대표란 사람은.
나는 이것을 이 사람의 솔직함, 쿨함으로 해석했다.
(적어도 앞에서 칭찬해가며 날 모셔가는척 하는 사람보단 낫지 않을까) 라고...
마지막 이메일을 기점으로 연락이 끊긴지 한달이 지난 후 다시 연락이 왔고, 기획자를 다시 뽑기로 했단다.
아주 돈 많은 청년 사업가가 강남에 산 비싼 건물에 사무실이 있었고, 돈이 많고 아이디어가 많아 앞으로 무궁무진한 서비스를 만들거라고 했다. 우린 그걸 만들어줄것이고 성공하면 모두가 다 나눠가질거라고 했다. 그 청년 사업가는 예전에도 직원들에게 다 골고루 나눠줬댄다. 그는 성공해본 사람이고 막대한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또 다시 성공하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이다. 우린 안정적인 월급을 꼬박 꼬박 받아가며 배부른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생에 세번의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몇번째인지 모를 기회가 나에게 왔다. 이제서야 나도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나의 꿈을 이룰 기회가 왔다. 대표가 돈이 많든 말든 사무실이 초역세권이든 말든 뭣보다, 월급 받으며 서비스를 만들어 본다는 그게 나를 설레이게 했다. 그래서 나는 사인을 했다.
3개월 계약직. 여긴 모두가 그렇게 시작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