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현실이 없으면 꿈도 없다

한 낮, 아지랭이

by metel

언니는 부산에 와서도 공부를 잘했다. 우등생이었다. 그런 언니는 고등학교를 야간을 갔다. 엄마의 주위 사람들은 엄마를 들쑤셨다. 딸내미 야간 고등학교 보내서, 낮에 돈 벌게 하라고 했다. 그래서 언니는 명문여상의 야간을 선택했고, 고등학교를 입학하기 전 봄방학부터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했다. 17살 여자아이를, 남자들만 있는 곳으로 보낸것이다. 엄마라는 사람이.

어느날 언니가 내게 잡채를 해준다고 했다. 뭘 많이 넣어야 하는 잡채를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그냥 당면만 가지고 해도 맛있다고 했다. 주유소에서 그렇게 해먹었다고 한다. 언니는 주유소에서 낮에 밥도 했다. 특히나 철이 없던 내게 그 사실이 참 슬펐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들어간 잡채를 둘이서 먹으며 얼마나 행복했던가. 우리 둘이선 언제나 행복하다.


나도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나는 인문계와 여상을 고민했고, 엄마는 네가 가고싶은곳에 가라고 했다. 무관심을 포장한 자유방임. 언니가 껴든다. '우리 주제에 무슨 인문계고. 여상가라!'

언니는 법이다. 그렇게 나는 여상을 가게된다. 부산 최고의 명문여상 '명문여자상업고등학교'. 그 시절엔 이 학교 모르면 간첩이었고, 명문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학교였다. 언니가 야간으로 간 그 학교를 나는 주간으로 들어갔다. 단지, 언니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언니는 야간을 다니면서도 전교 3등 이내의 성적을 유지했고, 학급임원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인문계보다 무서운 상업고등학교 아이들의 경쟁을 체험했다. 인문계는 비싼 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이유로, 우리집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선택한 여상. 그렇지만 현실은 달랐다. 같은 반 아이들은 입학전부터 인문계 학원비보다 더 비싼 학원비를 내고 주산.부기.타자를 배우고 들어왔다. 내가 가진 건 주판 한개. 선생님은 당연한 듯 학원진도에 이어서 수업을 나갔고, 나는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이곳은 명문 여상이었다. 난 또 시작부터 낙오자였다.


현실을 맞닥뜨려야 한다. 마주보고 인정하면, 그 다음을 꿈꿀수도 있었을 테다.

내가 사는 그곳엔 내가 있으면서도, 나는 그곳에 없었다.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으니, 벗어나야 할 현실도 없고, 꿈 꿀 미래도 없었다.

아니다. 벗어나고 싶었다. 매번 그랬다. 수업료를 못 내 종강시간에 선생님한테 호명되는 순간에도 그랬고, 집에 일수쟁이가 찾아와 빚독촉을 하는 순간에도 그랬다. 엄마가 아파 드러누워 있는 순간에도 그랬고.....

.....그랬고.... 그랬다.

나는 방법을 몰랐다. 나 스스로 돈을 버는 순간이면 그 모든게 다 끝날줄 알았다. 모든건 돈이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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