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가을비가 처연하게 내린다.
지난여름의 끝, 난 지독한 슬픔, 인생의 한고비를 넘는 것 같은 슬픔과 외로움을 생각하게 됐다.
대체적으로 발랄 명랑한 나지만 인생의 무게에,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운명 같은 것도
생각해봤고, 팔자라면 팔자, 내 인생의 지도 같은 것도 머릿속에 그려봤다.
앞으로 또 어떤 길을 갈 수 있을지, 가게 될지 의문문이지만
인생이라는 게 아이러니면서 한편으로는 정해진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슈낙의 글을 빌지 않더라도, 가을의 스산함은 더욱이 비 오는 날의 아련한 추억과 슬픈 감정의 전조 같은 알싸함은 나를 가라앉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그런 어둡고 무거운 감정에 젖거나 매몰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본다.
할 일도 많고 -원고가 밀려감-, 병원에 계신 아부지 걱정에, 나의 앞날? 에 대한 계획 등으로 며칠 잠이 안 올 정도로 긴장이 되고 극도의 스트레스로 과부하가 생겼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뭔가 진정이 잘 안된다. 누가 뭐라 하면 민감해지고, 말하기 조차 피곤할 때도 있다.
심호흡을 해본다. 지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힘들면 "디비 자라."라고 하셨는데 잠이 깊이 안 올 때도 있다. 어제는 의사분께 신경안정제라도 먹어볼까 여쭸더니, 힘들면 내과보다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으라던데 일시적인 현상 같으니 목욕하고,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두 시간 멍 때리고 오라고 하셨다.
어제 잠은 좀 잤는데 아침에 피곤하다.
어떻게든 하루는 흘러간다.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고, 알차게 의미 있게 보내자는 하루...
반 백 년을 넘어 살면서 "뭐 했니?" 하면 할 말이 없어지다가도,
"그래, 남한테 폐 끼치지 말고 감사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착한 마음으로 살자."라고 다짐해본다.
정말이지 가끔 울고 싶을 때 울음도 눈물도 펑펑 나오지가 않는다.
모든 게 경직돼가고 메말라가는 듯.
적어도 가슴에 응어리는 지지 말고 살자. 내려놓자, 싶은 게 요즘 나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