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여 년 만에 선배를 만났다. 1989년 말 혹은 1990년 초, 겨울 끝자락 우리는 사은회를 했고 끝나고
술잔을 기울였던 듯. 그리고, A형을 따라 대순진리회 종단으로 갔다. 선배와 동급생 대여섯 명이 우르르... 당시에 "도를 아십니까?"로 대순진리회에 빠져 제사를 지내고 돈을 내고, 뭐 그 조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형도 거기서 조직생활을 하다가 어느 시기에 나올 수 있었나 보다. 현재는 부산에 있는 모 공기업연구실에 다니고 있다. 선배의 일터와 집이 있는 영도 입구에서 만났다. 공간에 대한 기억이 몰려왔다. 어린 시절 여름날, 부모님, 동생과 함께 영도다리 밑에 바람 쐬러 나갔던 기억... 바람이 시원했고 인파로 붐볐다. 아버지는 군것질거리를 사주셨고, 엄마도 김밥인지 뭐 먹을거리를 사 와 서울시민이 한강으로 바람 쐬러 가듯 우리는 영도 다리 밑에서 바다내음과 바람을 쐬며 사람들 속에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련하면서도 생생한 기억들... 한여름 낮의 노곤하면서도 건강한 느낌들... 아버지는 지난해 여름부터 앓기 시작하셔서 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 어린 시절 영도에도 사셨던 거 같은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행복이라는 게 뭘까? 형도 나도 스물의 나이에서 오십이 넘은 중년으로 살아오면서 서로에 대한 느낌은 여전히 스물에 머물러 있는 듯... 주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생각나는 대로 쏟아냈다.
우리가 먹은 저녁은 미나리 삼겹살... 우리 삶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듯... 서민적이고도 뭔가 젊음을 되찾고 싶은 심정으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듯한 고깃집에서 서비스로 나오는 한강공원 라면까지 끓여먹으면서... 살아온 나날을 얘기했다.
우리의 마지막 만남은 사은회가 열렸던 명동 프린스호텔, 그리고 호텔을 벗어나 술 한잔 했던 것 같고... 집에 갈 시간을 놓쳐서 대여섯 명이 형이 속해있던 대순진리회 종단이 있던 동대문에서 더 가는 어느 매까지 가서 종단 대청마루 같은 곳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까지 먹고 돌아왔던 기억.... 그 아스라한 기억이 오롯이 되살아나며 삼십여 년을 뛰어넘은 시공간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흰여울길 반대편으로 돌았는데 영도 한 카페를 나오니 보름달이 휘영청... 팔월 보름이 한 달 남았네. 계절은 무심하게 돌아오고, 날들은 조금 기쁘면서 서글프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