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통화
요즘은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가을이 되어 그런가? 슬슬 로맨스가 그립긴 하다.
나의 옛날 남자 친구들을 떠올려봤다.
그렇게 사무치듯 그리운 이는 없다.
특히 S는 샌님으로 시작해서 샌님으로 끝났다.
그는 나더러 다 좋은데 오지라퍼라 싫다고 했다.
자기만 봐 달라는 거다.
자신의 마음을 먼저 얘기하고, 나에 대한 평가나 의중을 떠봐야지. 지 얘긴 하나도 안 하고
내 오지라퍼 성향만 싫다니... 또 하나 그에겐 애완견이 있다. 가꿈 약속을 잡고도 애완견이 아파서 못 나간다고 했다. 나는 내가 애완견만 못한 존재냐 싶어 기분 나빠지기도 했었다.
2~3년 만에 통화를 했다.
스위트 한 목소리만은 변함이 없다. 아니, 단순히 스윗한 건 아니고 중저음의 남성다운 스윗함..
그간의 얘기들을 다하고
"그밖에 별 일은 없지?"
한다.
"그럼 뭐가 있길 바라?"
내가 생각해도 생뚱맞은 소리를 하고... 조만간 다른 친구 H와 셋이 만나 술이나 한 잔 하자 한다.
나는 술친구의 범주인 것이다...
쓸쓸했다.
홍대 앞에서 만나 고기를 먹고, 인파 사이를 팔짱을 끼고 걸었으며 집에 잘 들어갔냐고 전화를 해오고...
내 갱년기까지 걱정해주던 너... 그로부터 2~3년이 흘렀고 나는 진짜 갱년기를 맞았다.
우리는 두 번의 스물을 보내고, 여전히 친구로 남아있다.
그도, 나도 미혼인 탓에 주변 친구들의 부추김도 있었으나... 그도 나도 그저 그렇다.
그는 여전히 훈훈한 목소리로
"별일 없지?"
한다.
무슨 일이 더 있겠냐고... 계절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너와 나의 청춘도 다 흘러가고 없다... 하지만 추억의 몇 자락을 더듬으며 '연인관계'로서는 단절 혹은 한 단락이 끝나고, 다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서로를 본다?
그가 미운 적도 있었는데 별 감흥이 없다.
인간적으로 다 이해되기는 한다.
이성적인 매력도 한 때인 거 같다.
전혀 내 이상형이지 않은 그의 남성성 혹은 스타일도 그런대로 봐줄 만하긴 하다.
예전엔 오히려 댄디한 그가 좀 경직돼 보이고 별로 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한없이 잘난척했던 몸짓도 이제는 그저 함께 나이 먹어 가는 동창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