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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리얼리스트 Dec 19. 2022

□ 그날의 블루

사랑하는 손

ㅁ 사랑하는 손 / 최승자

거기서 알 수 없는 비가 내리지

내려서 적셔 주는 가여운 안식

사랑한다고 너의 손을 잡을 때

열 손가락에 걸리는 존재의 쓸쓸함

거기서 알 수 없는 비가 내리지

내려서 적셔 주는 가여운 평화


◇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 친구의 손을 나도 모르게 불쑥 잡았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해변을 걷고 있었고, 바다의 짭쪼로운 내음, 습하지만 태풍전야의 바람이 예사롭지 않게 시원했다. 거기다, 뭔가 잘 통하고, 점심 먹으며 싸웠다가 커피 마시며 화해하고, 내 저녁 식사 초대 자리에 까지 어찌어찌해서 동행하게 된 그가 급 친근하게 여겨졌다. 고급 한우로 저녁을 먹고 식사를 대접해준 선배네 집에까지 함께 가서 디저트와 맥주를 마시고, 둘이 나와 커피 한 잔 하기로 하고, 잠시 들렀던 해변가에서였다.


나는 오늘 하루가 길지만 달콤하게 느껴지며 그래도 화해해서 다행이다, 싶은 심정으로 들떠있었다. 좋아서, 바다를 향해 달려가듯... 와아, 두 팔을 벌리다가, 함께 뛰자고 그의 손을 잡았던 거... 그는 그런 내 손을 잡히는 척하더니 슬그머니 뺐다.

자기는 아직 손을 잡을 정도가 아니었던 건지, 자기가 먼저 시비 걸고, 사과하고, 선배네 까지 따라와 놓고, 멋진 사진까지 찍어주고는... 결국 손은 뺐다.


난 머쓱해져서 빨리 커피 마시러 가자고 했다. 해변가에 있는 호텔 커피숍이었다. 아늑한 분위기에 멋진 음악, 분위기가 다시 로맨틱하게 흐르고... 이번에는 이 친구가 내 차에 시럽을 넣어주고,  멋지게 세팅된 테이블 건너편으로 손을 내미는 게 아닌가? 것도 마주 잡아달라고...


난 고개를 젓고야 말았다. 내 손을 뺐다고 토라진 건 아니었다. 황당함과 민망함에 가까웠다. 내가 잡으려 할 땐 빼더니, 이제 와서? 하는 괘씸죄.

그와 나는 손을 잡고 싶은 타이밍이 다른 거였나?

그 후로도, 다른 계절을 좀 더 보내긴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냥 서로가 서로의 손을 허물없이 잡아주었다면 어땠을까?

돌이켜보니 그도 나도, 굉장한 에고이스트였다.

순수를 가장한, 어찌 보면 깐깐하게, 서로에 대해 이것저것 재본 것도 같다...

-'2018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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