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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리얼리스트 Nov 09. 2019

시간이 멈춰진 도시 군산

소재 발굴 워크숍을 다녀와서

지난가을, 한국콘텐츠진흥원 주관으로 군산으로의 소재 발굴 워크숍을 다녀왔다.
나로선 10여 년 만에 다시 찾아간 군산이었는데, 처음 갔을 때는 세월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낙후되고 개발이 덜된 도시쯤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한 군데 두 군데 들러보면서 군산이야말로 고즈넉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조금씩 변모하고, 발전해 가는 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문화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는 ‘순수의 시대’ 1930년대가 고스란히 담긴, 역사와 문화의 고장이 바로 군산이었다. 게다가 우리 고유의 정신과 당당한 기품을 지닌 도시라는 생각이 들자 왈칵 반가움이 들었다.

나 역시 부산 태생으로 항구에서 태어나 바닷가 출신 특유의 열정과 개방성을 지녔다고 생각해왔는데 군산은 인천, 부산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부산이 6·25 때의 피난처였고, 인천이 개항시기에 이런저런 영향을 받았다면 군산은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우리 전형적인 예향을 고수하면서 일제의 수탈과 수모를 겪었다.

군산은 그동안 때로는 바보처럼 넘어가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하면서 위태위태한 가운데에서도 최소한의 자존심으로 버텨온 고장이다. 우직하고 고집스러운 지역색에 이런 역사적 배경이 배어 있었다.

우리나라 농촌의료봉사의 선구자인 쌍천 이영춘 박사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가옥, 양곡 수탈의 흔적과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옛 군산 세관, 일제강점기 국책은행인 조선은행, 일본인 히로스 게이사브르가 건축한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인 히로스 가옥을 둘러보며 유럽식, 일본식 건축물이 이색적이고 아름답기도 했으나 당시 우리 민족의 수모가 뼈아프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비극의 역사지만, 이런 아픔을 고스란히 껴안은 채, 당당하게 일어나서 새로운 역사를 써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느끼게 되었다. 

‘채만식 문학관’에서 나의 이런 군산에 대한 느낌과 문학적 상상력, 호기심은 절정을 이루었다. 49세에 운명한 채만식 선생은 1,000편이 넘는 문학작품을 남기셨다. 천재였지만 불우했던, 비운의 가족사를 들었을 때 눈시울이 붉어졌다. 문학은 고통을 끌어안을 때만이 만들어지는 극복의 소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 세관 건물과 은행 건물이 근대역사관, 갤러리와 건축박물관으로 변한 것은 좋아 보였다. 은파호수공원을 산책하면서 물의 고장 군산, 촉촉한 감성의 도시 군산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상업 도시면서 싸구려 장사치들이 아닌, 품위를 잃지 않았던 지역민들의 문화와 예술을 사랑했던 마음, 그 흔적들을 돌아보며 뿌듯함도 느꼈다.

특히 채만식. 고은 등의 걸출한 작가를 배출한 것을 보면 틀림없이 지역의 산수가 주는 특별한 정기가 있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는 시대적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정체되어 있다. 어쩌면 군산에 끈끈하게 배어 있는 아픔과 시대적 우울의 분위기가 흡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포기하고 절망하는 게 아니라, 아픔까지 보듬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산의 숨어있는 스토리를 발굴하여 드라마 혹은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조금 새로운 형식의 시대물, 역사, 문화,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 졌다.

내가 작가로 사는 동안, 이런 여행과 체험이 얼마나 될까? 앞으로 보다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새로운 각오와 다짐, 작가로서 사명을 느끼고 돌아온 워크숍, 답사여행이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주고, 군산 답사를 함께한 군산시 관계자들과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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