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있다가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본 적이 있는가? 사실 내 얼굴도 화장할 때 말고는 자세히 봐지지가 않는다. 얼굴은 ‘얼’이 흐르는 ‘굴’이라고 하던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람을 대할 때 그간의 연륜으로 상대의 얼굴만 보고 미리 심성을 짐작해보기도 한다. 나는 밥을 먹을 때 음악을 틀어놓고는 하는데 어느 날 아침,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며 소프라노 신영옥의 ‘얼굴’을 듣다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지금은 점점 흐려지고 있지만 내게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J의 얼굴이 떠오른 것이다. “그대가 옆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고 하더니 그 사람이 아닌, 다른 동료와 영화를 보러 갔는데 내 눈에는 스크린 가득히 J의 얼굴만으로 가득 채워진 적도 있다. 그즈음, 늦됐지만 지독히도 진한 첫사랑과의 사랑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사랑에 빠져있었던 것.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 있어서 대단한 사건이었던 그 만남 속에서 난, 무슨 중독에 빠진 듯, 오직 J만을 생각하며 다녔던 거 같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렇게 그의 얼굴이 스크린을 다 차지할 정도로, 어떻게 한순간도 놓칠세라 그를 떠올렸던 건지, 아니, 저절로 떠올랐던 건지, 스스로도 당황해하며, 영화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었다.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나는 밥을 먹다가 말고, 비련의 여주인공 마냥, 눈물을 주룩 흘렸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이렇게 노래를 듣다가, 힘든 일이 있을 때, 기쁜 일이 있을 때 그가 떠오르고는 한다.
요즘은 내 얼굴도 관심사다. 20대 때부터 피부 곱다는 소리는 종종 들었다. 아마도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의 영향이 크다. 특히 나의 어머니는 타고난 피부도 고우시지만, 가꾸기도 잘하신다. 오이무침을 하다가도, 참외를 깎다가도 잘못 썰어진 부분이라든가, 반찬용 오이 말고 꼭 따로 오이나 오이 껍질로 얼굴을 문지르시는 걸 많이 봤다. 그러다 우리에게도 해주시기도 했고… 참외도 마찬가지, 참외를 깎고 난 껍데기로 잠시 잠깐이지만 얼굴에 문지르시는 것. 나는 그렇게까지 관리는 못하고,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피부 덕분에 피부 미인 소리를 적지 않게 들어왔기에 웬만큼 피부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나 스스로가 봐도 눈에 띌 정도로 탄력이 떨어지고, 잔주름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 게다가 눈가가 처지는 노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무방비로 마음만 졸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더 거울을 안 보는지는 모르겠다. 보면 속상하니까… 그렇다고 늙고 쳐져가는 내 얼굴과 피부를 어떤 수술이나, 시술로 바꾸고 싶지는 않다. 모르겠다.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부작용이 없는 한, 적당한 의술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손을 보게 될 지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자연스럽게 나이 먹어가는 게 좋고, 노화현상도 편하게 받아들여야지 싶다.
하지만 사람의 표정은 또 다른 것 같다. 시대가 좋아지고, 문명의 발달에 따라 영양 상태가 좋아지고, 외양을 꾸미기도 잘해서 그런 지 요즘엔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을 가만히 관찰해보니, 마음에 응어리가 적고, 정직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래도 숨겨야 할 엉큼함이나 어두운 세계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인지, 자연스럽고, 생기 있고, 표정이 살아있는 것 같다. 나도 그런 표정을 갖고 싶다. 배우만큼은 아니지만, 희로애락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 가식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표정과 밝은 미소… 나는 잘 웃는 편이지만, 눈물도 짜증도 많아서 웃음이 반, 찌푸림이 반이다. 사람의 표정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자주 짜증을 낸다면 찌푸린 얼굴이 될 것이고, 많이 웃고, 너그러운 마음을 지니면 환하고, 여유 있는 표정을 지닐 수 있지 않을까? 내 안의 화를 잘 다스리리라 다시 한번 마음먹는다. 또 잘 자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마음에 근심거리가 있으면 잠이 안 오고, 자고 싶어도 못 자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보았다. 마음을 다스리고, 많이 웃을 것, 좋은 음식을 섭취하고, 잠을 잘 잘 것. 이것은 생기 있는 표정과 천천히 늙어가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나이 오십이 넘으면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도 했다. 이미 오십을 넘어 이듬해를 맞고 있는 나. 나는 내 얼굴에 책임을 지고 있는가? 이것도 자신 없다. “사람은 생긴 대로 논다.”라는 말들도 많이 하는데, 나는 생긴 대로라면, 엄청 야무지고, 깍쟁이로 살아야 하는데, 사실 많이 게으르고, 느슨하고, 가끔 스스로 푼수 같다고 느낀다. 생각보다는 남을 잘 믿고, 속수무책으로 속없다는 소리도 듣는다. 가끔은 어리숙하게 좀 손해 보고 사는 게 마음 편하지만, 매번 어리바리하다가는 인상처럼 야무지지 못하게 실속은커녕 나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기도 하지 않을까?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정도의 무게감은 있어야지 생각한다. “얼굴 값한다.”라는 소리들도 많이 한다. 분명 미남•미녀라서 혜택도 받고,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얼굴이 예뻐서' 인기가 많고, 환대를 받고, 알게 모르게 우대해주는 그런 속에서 우쭐하거나 해서, 실수하거나, 사고라도 치면 나오는 말일 거다. 그만큼 유혹도 많고, 부대낌도 있겠지. 나는 미인 축에는 못 들어서 그런지 왠지 “얼굴을 무기로 삼는다.”라는 말에는 동의가 안 되더라. 그래서 아마 얼굴을 뛰어넘는 실력이나 운이 있어서 그 미남•미인들이 혜택을 받고, 사람들의 우대를 받는다고 믿는 쪽이다. 그러다가 나이 예순을 넘으면 학벌이나 얼굴의 미추에 관계가 없이 다 평등해진다는 말도 들었다. 어차피 인생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 자연인에 가까워진다는 얘기가 아닌가 한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세상에 와서 머리에 지식을 넣고, 교양을 갖추고, 얼굴을 가꾸며 살아도, 세월은 피해 갈 수 없는 것.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는 말이리라.
그리운 사람 얼굴을 떠올리다가 ‘내 얼굴’로 왔다. 그래도 조금은 예뻐졌으면 좋겠다. 선천성 미인이 아니라면, 후천성 미인이라도 되고 싶다. 스물, 서른, 마흔을 지나 쉰 살이 되어 절실해지는 바람이다. 스스로 만족하기 위하여, 타인에게도 좀 더 온화한 모습을 보이고 싶고, 맑은 눈으로 타인을,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그것은 이제 눈빛도 흐려지고 마음의 때도 많이 타서 결코 맑고 순수한 때로 돌아갈 수도 없고, 꽃다운 나이가 아니기에 아주 시들어버리기 전의 마지막 안간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