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gom Feb 05. 2020

막차

텅 빈 지하철은 오랜만이었다. 대낮의 수도권은 칸마다 누군가를 앉혀놓고 엉덩이 붙일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오늘은 정반대, 혹은 그 이상이었다. 누워도 될 만큼 널찍한 자리가 곳곳에 펼쳐졌다. 조금 취한 척하고 한 시간의 단잠을 허락하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쉽게 잠들지 못 했다. 지하철은 어느덧 동작대교를 건너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의 크나큰 장점은 강을 건너기 위해 잠시 지상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좁은 창문이 상영하는 밤강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어둡고, 고요한 와중에 강변북로는 여전히 헤드라이트와 가로등으로 북새통이었다. 참 부지런한 별들이라고, 무심코 생각했다.


마침내 도착한 역에서도 공기는 마냥 차분했다. 착발 전후로 이번 열차는 우리 역을 지나는 마지막 열차다 - 오늘 운행은 마감되었으니 출구로 나가달라는 방송이 반복되었다. 마스크를 쓴 채 핸드폰을 투닥이는 여행객들과 셔터문을 하나둘 내리는 역무원들이 눈에 띄었다. 목적 없이 움직이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아 괜히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발걸음을 절로 재촉했다. 다행히 폐쇄되기 직전에 빠져나왔다.


간만에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생각을 비웠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이 첫 생각임에 기분이 좋아졌다. 한때는 자주 갔을, 그러나 몇 년만에 처음이던 길을 걸으며 그 공간을 그저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변하지 않은 곳에 남은 추억과 변해버린 곳의 낯설음을 편견 없이 수용하기로. 어제도 내일도 오늘을 겁낼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걸 가슴 아리게 느껴보고 싶었다. 결국 아린 건 볼따구니 두 짝뿐이었지만.

작가의 이전글 마냥, 두려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