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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Mar 05. 2020

버스

가는 방향으로는 앞차의 붉은 후미등밖에 보이지 않고, 반대로 오는 방향에서는 새하얀 전조등이 무슨 희망거리인 마냥 줄지어 떠나가니까, 저 사람들은 한없이 기쁜가봐, 집에 가는 길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나도 집에 가는 길인데. 붉음은 온갖 것에서 멀어짐을 상징한다. 별도 멀어지고 사랑도 멀어지고 장래는 아예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됐는데, 차고 신호등이고 적색만 깜빡이면 나는 언제 전진을 하나. 하물며 주의, 좌회전, 우회전이면 어디 덧나나.


그러나 버스는 간헐적인 정지 끝에 내려야 할 정류장에 데려다줄 것이고, 나 역시 그 정지의 혜택을 보아야 한다. 붉게 익어 탐스러운 STOP 버튼을 눌러야만 이 하루가 마무리된다. 오직 멈춰설 때 닫힌계에서 등속운동 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니까, 부재로써 존재를 설명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나의 운동상태에 대한 정보만큼은 확실히 인지하게 된다. 불확정성의 원리를 생각하면 꽤 놀라운 일이다! 조그만 입자보다는 명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니까.


타고 내리고를 반복하다보면 집이든 미래든 어디든 데려다주겠지. 가는 길이 크게 막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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