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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와의 대화

by ggom

1. 들어가며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사실을 오늘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역사는 마치 과거가 오늘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대화"는 아니다. 과거와의 대화는 과거로부터의 일방적인 의사전달일 뿐, 화자와 청자의 지위가 어지러이 뒤바뀌는 쌍방향의 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늘은 과거의 청자가 될 수는 있어도 과거로의 화자는 될 수 없다.

한편 미래와의 대화는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어렵다. 오늘이 곧 미래의 과거가 된다는 점에서 미래에 오늘의 흔적을 남기는 식의 의사소통은 가능할 것이다. 반면 그 반대 방향은 불가능해보인다. 오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걸 수 없는 것처럼 미래의 나는 오늘의 나에게 말을 걸지 못 한다. 이처럼 대화의 방향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시공을 뛰어넘는 대화는 오로지 시간의 강에 병을 던져놓고 훗날 언젠가의 내가 발견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다소 무책임한 방법으로만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


2. 주장

예컨대 다음의 두 가지 상황을 생각해보자.


(1) 과거의 내가 일기장에 "공부 열심히 해라"라고 적은 것을 오늘 우연히 발견하였다.

(2) 오늘 난데없이 미래의 나로부터 "공부 열심히 해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1)의 상황은 아주 상식적인 것으로, 상술한 과거와의 대화의 전형이다. 과거의 내가 그 당시 미래였던 오늘의 나에게 메시지를 남겼고, 그것을 내가 오늘 수신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연히" 발견하였다는 점이다. 만약 내가 일기장에 적은 것을 그 날부터 줄곧 기억하여 단지 오늘 펼쳐본 것이라면,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한 필기일 뿐이다. 요컨대 시간을 뛰어넘는 대화는 기억의 단절, 즉 망각을 요건으로 한다. 과거의 내가 무언가를 발신하였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고 있어야 그와의 대화가 성립할 수 있다. 대화는 타인 또는 그에 준하는 상대방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2)를 분석해보자. (2)에서도 만약 현재와 미래 사이의 망각이 전제된다면, 정말로 미래의 내가 그때의 과거일 지금의 나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전달한 것이고 내가 그것을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수신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1)과는 달리 그럴 개연성이 있을 뿐 실제로 대화가 이루어진 것인지는 한참 뒤에야 알 수 있다. 미래와의 대화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내가 그러한 메시지를 수신하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미래를 맞이하여 자발적으로 지금의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그리고 오직 그때가 되어야만 유효한 대화가 완성되었음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망각은 결국 자발적 당위의 성립 가능성을 내포한다. 소위 "타임 패러독스"라고 알려진 시간여행의 역설을 이 상황에 대입해보면, 오늘의 내가 미래의 나로부터 메시지를 수신하였음에도 미래의 내가 발신하였다는 사실이 없다면 미래와의 대화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패러독스가 아니라 그것이 애초에 미래로부터의 메시지가 아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미래로부터의 발신이 없었음이 밝혀진다면 그것은 미래와의 대화가 아니라 단순한 잡념이었다. 한편, 대화는 어떠한 당위나 구속으로부터도 자유로이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성립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이것이 미래와의 대화가 성립하기 위해 미래로부터의 발신이 "있어야 한다"는 당위와 상충할 수 있다. 이러한 모순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망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해당 주장의 요체이다. 망각된 상태에서 미래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면 자발적인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고, 미래와의 대화의 성립요건도 모두 충족한다. 따라서 오늘날 어떤 수신이 있었고, 그 사실이 완전히 망각되고 나서, 미래에 발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미래와의 대화로 볼 수 있다.


3. 한계

주장은 미래와의 대화 가능성을 여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여전히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제약은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과거와의 대화의 경우 역시 미래와의 대화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발신, 과거와 현재 사이의 망각, 현재의 수신을 요건으로 한다. 망각이나 수발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대화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미래와의 대화와 같다. 이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되는 순간 과거와의 대화가 성립하고 그 사실을 수신인인 오늘의 내가 알 수 있다.

반면 미래와의 대화는 현재의 수신, 현재와 미래 사이의 망각, 미래의 발신이 모두 갖춰지더라도 그것을 아는 순간은 수신하는 오늘이 아니라 발신하는 미래 시점이다. 메시지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다 하더라도 사람은 시간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뒤틀 수 있는 이론의 개발에 앞서 인간 스스로가 시간을 초월할 능력이 있어야 함은 명백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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