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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Mar 14. 2021

러시안룰렛의 문제

    러시안룰렛의 문제로는 크게 두 가지가 지적된다.


    하나는 첫 번째로 방아쇠를 당긴 자가 곧바로 사망에 이를 때 발생한다. 러시안룰렛에 쓰이는 리볼버의 장탄수는 대개 6발이라 하고 그중 하나에 실탄이 들어있으니 죽을 확률은 1/6이다. 누구든 처음에 쏘나 나중에 쏘나 그 확률은 동일하지만, 만약 나중 차례에 쏘았다면 다른 누군가 앞서 죽어줄 가능성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이를 누리지 못 한 것은 충분히 불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다. 설령 자신이 마지막 차례로서 앞의 모든 사람이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죽음을 미리 아는 것과 알지 못 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다소의 여유가 허락된다면 사랑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길지 않은 인생을 반추할 기회라도 가져볼 수 있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게임의 조작 여부를 확인할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된다. 목숨을 잃은 사람으로서는 이것이 정말 1/6 게임인지 아니면 6/6 게임인지 알아볼 길이 없다. 그는 새로운 게임에 참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가 유일하게 몸담은 그 게임마저 제대로 검증하고 비판할 수 없.


    다른 하나는 0/6 게임의 문제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사망확률이 1/6 내지 5/6일 것이라 생각하고 본인은 그 여집합, 즉 1/6 게임에서는 5/6에, 5/6 게임에서는 1/6에 해당될 것이라 믿으며 총구를 감히 스스로에게 겨눈다. 이는 현실적으로 동일한 확률구조를 가진 리볼버를 남들에게 당기는 것과 다름이 없는 반면, 사망의 잘못을 본인에게 귀책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악랄한 형태임을 우선 지적해둔다. 이러한 믿음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에서 0/6 게임은 필히 무한경쟁으로 귀결된다. 탈락자가 나올 때까지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매 차례에 응하게 되며 남들의 생존을 방해해야만 하는 자타파괴적인 입장에 놓인다. 단순히 패배자를 양산하는 것이 문제라면 6/6 게임이 가장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게임의 패배자라면 후행 게임을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동일한 이해관계에 놓이는 사람들은 차라리 리볼버 또는 이 게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믿음이 1/6부터 5/6 사이에 위치한다는 점에 주목하라. 6/6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0으로서, 런 게임 애써 참여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러시안룰렛이 첫 주자를 사망시킨다면 그에게 게임의 공정성을 담보할 길이 없다. 혹 누구도 죽이지 않는 0/6 게임이라 하더라도 확률구조가 적극 은폐된다면 사람들은 러시안룰렛을 무한 반복해야 하는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특히 후자와 관련하여, 온갖 스트레스와 신경증에 시달린 일부 참여자들은 스스로 리볼버에 총알을 정렬하는 비극에 이를 수도 있음에 주의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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