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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적 스모그라는 그럴듯한 명칭으로 절대적 운명론을 옹호하는 일부 세력이 있으니 통탄을 금할 길 없다. 절대적 운명론은 증명을 위한 각고의 노력 없이 오로지 사고실험에 의존하여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그러나 절대적 운명론은 그 가정부터 틀려먹었다. 그들의 그릇된 가정은 바로 시간선(사건선)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시간선이 하나라는 것은 임의의 시공간은 유일하며 어떠한 양자적 분기도 허락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제하에서는 복수의 시간여행자가 완벽히 동일한 시공간에서 만나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에, 절대적 운명론자들이 제시하는 일련의 증명이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은 것이다. 단일한 시간선을 전제하는 것 자체가 모든 사건의 가능성을 0 혹은 1로 단정짓는 일과 동치이기 때문이다. 즉 모든 시공간상 사건이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가정한 전제와 증명코자 하는 명제가 동치인데 이를 숨기고 포장하였으니 얼마나 가소로운가?
또한 인지적 스모그의 개념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절대적 운명론에 따르면 인지적 스모그는 시간여행 가능성으로 인한 사람들의 인지상 왜곡을 의미한다. 특히 유일한 시간선의 논리적 무모순을 파괴하는 타임 패러독스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설정된 개념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절대적 운명론의 절대적 취약점인 타임 패러독스를 호도하기 위해 도입된 Ad Hoc에 불과하다. 인지적 스모그의 불분명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절대적 운명론의 본질과 인지적 스모그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 주변에는 심신 멀쩡한 시간여행자들이 많다. 그들이 인지적 스모그의 환자라는 것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시간여행자가 겪는 다양한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전제부터 뒤집어야 한다. 시간선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고, 그 수에 제한은 없다. 모든 시간선이 이미 존재하는 무한인지 여행으로써 새로 분기되는 무한인지는 밝혀져야 하겠지만 단일한 시간선을 가정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역사가 양자화"된다는 것은 분명 이런 의미이다.
시간여행이 이루어지면 모든 사건은 관측되기 이전 상태로 초기화되어 새로운 양자적 주사위가 굴려진다. 당장 1초 전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1초 이전까지의 모든 사건이 새로운 확률게임에 노출되고, 그에 따라 지금껏 경험한 것과 판이하게 다른 세상, 즉 다른 시간선에 놓이게 된다. 물론 기가 막힌 확률로 지금과 정확히 똑같은 세상에 위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겉보기에만 지금과 같은 세상이지 정말로 지금과 같은 세상은 아니다. 백지에 그림을 그렸는데 우연히 전과 같은 그림이 나온 것일 뿐이다. 시간여행은 모든 것을 초기화시킨다.
이러한 가정을 받아들이면 인지적 스모그라는 추잡한 개념 없이 다양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특히 숱한 시간여행에도 불구하고 타임 패러독스에 노출되지 않은 이유가 명료하게 파악된다. 시간여행으로 또 다른 본인을 만난다 하더라도 그는 진짜 다른 사람이지 본인이 아니다. 심지어 본인과 정확히 똑같은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여도 본인이 아니다. 남을 만나는데 타임 패러독스가 발생할 리 없다. 그를 죽이든 사랑하든 시간여행자의 자유로운 몫이다.
시간여행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본인이 지금껏 살아온 시간선으로는 절대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확률게임을 통해 그나마 비슷해보이는 세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전부이다. 사람들에게 경고해야 한다면 자유의지 같은 거창한 문제를 떠들 것이 아니라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알려야 한다. 시간여행 안내문의 개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