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의의 필요성
법은 변화한다. 의회에서의 제개정뿐만 아니라 사법기관의 각종 판결, 그리고 국민적 합의에 이르기까지 법은 시대에 맞추어 재구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법의 시간종속성은 시간여행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어서 시간여행자의 법적 지위가 문제시된다. 예컨대, 어떠한 행위가 과거에는 범죄를 구성하였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은 경우, 과거로 떠난 시간여행자가 그곳에서 이 행위를 저질렀다면 이는 범죄인가? 만약 범죄에 해당한다면 사람들은 이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지 않을 시공간을 찾아 범법 욕구를 충족시킬 것이다. 반대로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해당 시공간의 사법체계는 무력화된다. 시간여행으로 인한 사법적 딜레마의 본질을 탐구하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해본다.
2. 시간여행자의 법적 지위와 시공간관할
시간여행자의 법적 지위는 소송법상 시공간관할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시공간관할은 특정 시공간상 사건에 대하여 어떤 시공간상 법원이 어떤 법률에 따라 재판권을 행사하여야 하는가의 문제로서, 시간여행연구개발센터 소재지(시 cc.cc.cc 공 dd.dd.dd)에서는 이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반면 일부 시공간에서는 관련 규정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였다.
(1) 시 ee.ee.ee 공 ff.ff.ff 소송법에서는 시간여행자는 시간여행을 출발하였을 때의 국적이 유지되며, 시간여행 중 행한 행위가 시간여행을 출발하였을 당시의 소속국적의 법률에 위배되는 것이라면 그 당시의 소속국 법원의 재판을 받아야 된다고 한다. 속인주의를 따르고 있다.
(2) 시 gg.gg.gg 공 hh.hh.hh 소송법에서는 시간여행자는 시간여행 중인 시공간의 국적으로 의제되고, 시간여행 중 행한 행위가 해당 시공간의 법률에 위배되는 것이라면 바로 그 시공간 법원의 재판을 받아야 된다고 한다. 속지주의를 따르고 있다.
전통적인 여행과는 달리 시간여행은 공간적 이동에 더해 시간적 이동도 겸하게 되므로 이론상 2*2=4가지의 관할권이 가능하다. 즉 시간적 속인과 공간적 속인(첫 번째의 경우), 시간적 속인과 공간적 속지, 시간적 속지와 공간적 속인, 시간적 속지와 공간적 속지(두 번째의 경우)가 가능하다. 한편 시간여행자의 국적과 같은 법적 지위에 따라 더 복잡하게 분류할 수도 있겠으나 명확한 논의를 위해 생략한다.
시간적 관할성과 공간적 관할성이 교차되는 것은 논리적인 문제가 있다. 예컨대 한 시간여행자가 A시 A공에서 출발하여 B시 B공으로 시간여행을 했다고 하자. 시간적 속인과 공간적 속지의 경우 시간여행자는 A시 B공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그러나 A시에 B공이 사법체계를 갖춘 국가로서 존재하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고, 이것이 존재하는 시공에 대한 시간여행만을 허용하는 것 역시 시간여행자에게 과도한 주의를 요구하는 것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시간적 속지와 공간적 속인의 경우 B시 A공 법률의 적용을 받는 것인데 이것 역시 동일한 문제에 직면한다. 따라서 우리의 논의는 시공간적으로 속인주의와 속지주의가 일치하는 경우로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하 시간적 속인과 공간적 속인을 단순히 속인주의로, 시간적 속지와 공간적 속지를 단순히 속지주의로 서술한다.
속인주의는 시간여행자가 방문한 시공간의 사법체계가 무력화된다는 문제가 있다. 1.에서 언급하였듯, 시간여행자의 소속국에서 어떠한 행위를 범죄로 보지 않는 경우, 다른 시공간에 방문하여 그러한 행위를 저지르더라도 해당 시공간은 질서를 유지할 방법이 없다. 반대로 속지주의의 경우 시간여행자의 소속국의 존립이 문제시된다. 강력한 형사체계를 갖춘 시공간으로부터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시간여행으로 인해 이동의 거래비용이 극단적으로 작아지면서 사법체계의 조정 시차를 이용해 법적 차익을 누리려는 도덕적 해이가 딜레마를 야기한 것이다.
3. 범시공간적 공동정부 이론
따라서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시공간상 사법체계의 조정 시차를 극단적으로 줄여야 한다. 만약 이를 0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어떠한 시간여행에서도 법적 차익을 얻을 수 없게 된다. 조정 시차가 0이 된다는 것은 모든 시공간이 동일한 사법체계를 따른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시공간을 초월한 공동정부 구상과 일맥상통한다. 법률만을 통일하는 것은 정부간 집행력의 차이로 인하여 미세한 법적 차익의 가능성을 남겨두게 되므로, 최소한 교정기구나 경매기구와 같은 집행기관 역시 통일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범시공간적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각 시공간정부를 모두 소멸시키는 것으로서 다양성을 파괴한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법적 차익은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 각 사회의 가치관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더하여 인류의 전 역사에 걸쳐 동일한 사법체계를 적용하는 것은 인류의 발전가능성과 상치되는 것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설령 졸속법률 따위로 인한 어두운 역사라도 억지로 개변하는 것은 그 피해자에 대한 모욕일 수 있으며, 시간적 시행착오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인류 발전의 본질이라는 주장이다.
4. 결론
사법적 딜레마는 결국 사법체계의 차이로 인한 법적 차익의 평가로 귀결된다.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도덕적 해이로 볼 것인가, 아니면 존중되어야 하는 사회의 다양성으로 볼 것인가? 법률체계의 기술적인 교정에 앞서 역사와 공동체에 대한 인류의 가치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