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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May 09. 2022

시간을 거꾸로 산다는 것

나는 사실 시간을 거꾸로 살아. 나는 소위 미래라 불리는 모든 일을 경험했고 과거라 불리는 모든 일은 경험하지 않았어. 지난 시간의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 - 아니, 몰라.

그렇다고 젊어진다는 건 아니야. 나의 세포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생사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어두워지고 공평히 멈춤을 맞이하겠지. 하지만 나는 죽음이 과 같아서 모든 경험이 그로부터 파생되었단다. 죽음을 향한 시간의 이끌림은 나에 마치 수구초심 같은 거야.

매순간은 언젠가 경험한 것 같고 지난 일은 모조리 까마득해져서 주어든 동사든 모조리 탈락되고 말아. 그 경험은 오로지 원념으로 남아 나의 감정을 자극하기 일쑤야. 신기한 게 좋았던 기억(과거를 이야기하는 거야)보다는 안 좋았던 기억이 진하게 남아서 구체적인 맥락 없이도 가슴에 원죄를 남기지 뭐야. 두근거림은 그 어느 때보다 억제되고, 보이지 않는 과거를 붙잡고 외치는 일뿐이야. 아무도 어떤 경험도 공명하지 않아.

미래라고 별반 다를 것 없어. 앞으로의 경로가 뻔히 보인다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비극이야. 정해진 길은 열심히 걸어야 하고 정해지지 않은 길 상상하는 것조차 비난받겠지. 과거와 미래를 바꾼 대가는 분명 나의 감정 일체일 거야. 함부로 추억할 과거가 없어 그립지 않고, 불확실한 미래도 없어 불안하지 않지. 나는 졸지에 (타임)머신이 되어버린 것 같아.

그러니까 이해해줘.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과거를 중얼거린다거나, 설렘 없는 눈빛으로 미래를 걸어다니는 양 보여도 말이야. 알고 싶은 것들을 놓치고,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알아버린 깊은 슬픔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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