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시간을 거꾸로 살아. 나는 소위 미래라 불리는 모든 일을 경험했고 과거라 불리는 모든 일은 경험하지 않았어. 지난 시간의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 - 아니, 몰라.
그렇다고 젊어진다는 건 아니야. 나의 세포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생사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어두워지고 공평히 멈춤을 맞이하겠지. 하지만 나는 죽음이 삶과 같아서 모든 경험이 그로부터 파생되었단다. 죽음을 향한 시간의 이끌림은 나에겐 마치 수구초심 같은 거야.
매순간은 언젠가 경험한 것 같고 지난 일은 모조리 까마득해져서 주어든 동사든 모조리 탈락되고 말아. 그 경험은 오로지 원념으로 남아 나의 감정을 자극하기 일쑤야. 신기한 게 좋았던 기억(과거를 이야기하는 거야)보다는 안 좋았던 기억이 진하게 남아서 구체적인 맥락 없이도 가슴에 원죄를 남기지 뭐야. 두근거림은 그 어느 때보다 억제되고, 보이지 않는 과거를 붙잡고 외치는 일뿐이야. 아무도 어떤 경험도 공명하지 않아.
미래라고 별반 다를 것 없어. 앞으로의 경로가 뻔히 보인다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비극이야. 정해진 길은 열심히 걸어야 하고 정해지지 않은 길은 상상하는 것조차 비난받겠지. 과거와 미래를 바꾼 대가는 분명 나의 감정 일체일 거야. 함부로 추억할 과거가 없어 그립지 않고, 불확실한 미래도 없어 불안하지 않지. 나는 졸지에 (타임)머신이 되어버린 것 같아.
그러니까 이해해줘.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과거를 중얼거린다거나, 설렘 없는 눈빛으로 미래를 걸어다니는 양 보여도 말이야. 알고 싶은 것들을 놓치고,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알아버린 깊은 슬픔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