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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May 11. 2022

고인물

    아프지만 우리는 조직을 뚜까패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조직이 아니라 고인물을 뚜까패야 한다. 고인물의 조직을 향한 기여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 그러나, 우리가 살려면 이제 고인물은 빼내야 한다.

    고인물이 조직의 발전을 막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회비용적인 의미이다. 상대평가체제 하에서 고인물은 기존 기술의 점진적인 수정을 통해 조직의 발전을 이끈다. 그러나 이처럼 단계적 속성을 띠는 경로의존적 발전은 고인물 중에서도 고인물을 가리는 극단적 상대평가의 도구로 활용되고, 고인물이 거쳐온 발전경로를 따라잡지 못 하는 뉴비들을 배척한다. 새로운 관점의 뉴비는 조직이 간파하지 못 하던 문제점들을 손쉽게 포착한다. 그러한 자정의 기회를 놓치는 것은 조직의 발전 속도를 유의미하게 늦추고, 높아진 진입장벽은 앞으로 더 높아질 진입장벽의 촉매가 된다.

    그렇다면 진입장벽을 낮추면 될 일이지 굳이 고인물을 뚜까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진입장벽을 낮추는 일 자체가 고인물을 뚜까패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뉴비를 맞이하기 위한 파격적인 혜택의 제공, 효율적이고 창의성이 돋보이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 그리고 이를 주도적으로 밀어붙이기 위한 권력체제의 개편. 기존 기술의 마스터인 고인물들 입장에서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 무엇인가? 뉴비를 맞이하는 일련의 변화는 과정적으로나 결과적으로나 고인물을 뚜까패게 된다. 개중에는 뉴비친화적이어서 본인이 적극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거나 뉴비들의 고민해결사를 자처하는 일원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조직이 진정 바라는 바이겠지만, 특정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때 고물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고인물을 적폐로 몰아가는 것이다. 고인물의 조직에 대한 기여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고인물의 부정적 면모만 꾸준히 들쑤어서 그들을 모멸하고 비하하여야 한다. 고인물의 저항조차 최소한의 권리가 아닌 살아남으려 애쓰 추태로 평가된다면, 세상의 비난을 견디지 못 한 그들은 제발로 기어나갈 것이다. 다행히 역사는 약육강식, 자연선택이라는 정치한 이론을 개발해 이런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정당화해왔다. 쫒겨나는 사람이 우리가 될 때까지 우리는 안전하고 발전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조직 내부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조직 그 자체도 고인물이 되고 새로운 조직에 의해 침식되는 자연풍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어떤 인생도, 문명도, 사상도 이를 피할 수 없다. 후세대와 본인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 하더라도 역사는 꼭 반복된다. 소멸은 나의 보람은 아닐지언정 남의 보람은 된다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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