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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May 14. 2022

입장이 되지 않아

    티켓을 사 들고 역에 이르렀다. 어두컴컴한 플랫폼에 사람들은 몇 줄로 북적였다. 나는 무런 생각 없이 기차 오기를 기다렸다. 빵― 기차가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기차는 우리 쪽으로 오는가 싶더니 미묘하게 다른 곳에 멈춰섰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텅 빈 열차에서는 아무도 내리지 않았고 아무도 타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짐짓 모른 체 했고 자신의 스마트폰이든 동행한 사람이든 기차 아닌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그럴 것이 없었다.

    희한한 광경이 몇 차례 반복되자 나는 참지 못 하고 물었다. 사람들은 분명 여기에 줄 서 있는데 왜 기차는 저기서 멈춰요? 아무도 타지 않는 기차는 무슨 소용이고 무엇도 타지 않으려는 줄은 무슨 소용이에요?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했다. 관성적 줄은 어느새 수단성을 상실하고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줄에만 몰입한 덕분에 기차가 오지 않아도 초연하게 되었으며―오히려 기차가 오는 것을 더 불안해하였으며―마침내는 이곳이 역이라는 사실마저 지워버렸다. 그들은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었고 수단으로 자리잡은 삶에 적극 만족했다. 나는 그 어여쁜 모습에 홀딱 반했다.

    그러나 말짱히 서 있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줄이 줄을 부르고 맨 뒤에 서 있던 내가 누군가의 앞에 서게 될 때 나는 진전한 것인가 파묻힌 것인가. 줄을 옮기자는 이야기를 더할 나위 없이 하찮게 만든 이는 누구인가. 좌절과 시기 어린 경멸 속 오지도 않는 기차를 제일 먼저 탈 사람들의 자부심은 마땅한가... 라면서, 줄에 진입하는 누군가의 질문에, 황당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또 지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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