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gom Jun 11. 2022

너무 가까워진 종말

멀리 갈 것도 없다. 1초 뒤 종말이랜다. "1초 뒤 종말이야."의 "야."와 함께 종말 카운트다운은 시작되었다. 아니, 사실 종말은 예정되어 있었는데 하필 내가 그걸 알아차린 게 1초 전이라. 차라리 몰랐다면 종말이 왔는지도 모르게 생사가 뒤틀렸겠지. 평범한 하루라면 '곧 종말이구나.'와 '종말이었구나.' 모두 나의 품에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1초 뒤 종말이라는 그 말 덕분에 전자는 살아남았다. 고마워 해야 하는 건지, 참.


1분 1초가 아깝다는 생각은 좀 진부했다. 숱한 테스트는 가용한 모든 1분 1초를 아깝게 만들었는데 뿌듯함 하나 없이 아쉬움만 가득차게 만드는 기제가 당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정과 생각에 불을 켜는 것은 순간이고 1초는 무수한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 사이에 난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믿었다. 말로 풀기에는 너무 바쁜 관념과 감상을 느긋이 즐기기로 했다.


한창 회상에 젖어 있을 즈음 종말에도 차례가 있는 듯 비명이 산발적으로 울려퍼지는 것을 느꼈다. 무슨 대단한 추억거리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끝내려니 그제야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해마를 싹싹 긁어내자 남은 건 전두엽뿐이었기에 마지막은 없는 일을 마구 상상하기로 했다. 약간의 후회를 잉크로 다른 시나리오를 적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선택지를 가늠하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진짜 본인으로 돌아오자 육신은 부서졌다. 멀찍이 힘겹게 버텨내는 다른 이들이 보였다. 누군가의 기억과 상상 속에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지막 생각이 들었다. 평생 생각을 고마워하고, 또 미워하다가도, 결국 그와 생사를 함께하였음에 위안을 받았다. 주인 없는 생각이 또 다른 육신을 찾아 세상에 자리잡기를 바라면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몰빵한 것의 몰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