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gom Jun 23. 2022

선풍기와 자연의 싸움

바람 부는 저녁, 선풍기가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선풍기로 손을 뻗었다. 정지 버튼을 누르려는데 여느 때처럼 이상한 생각이 돋아서 선풍기 몸통을 돌렸다. 선풍기는 이제 나 대신 창문을 향해 프로펠러를 돌렸고, 바야흐로 선풍기 대 자연의 서막이 오른 것이었다.


당장 든 생각은 자연히 자연이 이길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선풍기 바람이 시원하단들 내 방에서나 지배자일 뿐이다. 반면 자연은 지축을 뒤흔들 정도니 전기가 애써봤자 콧방귀에도 미치지 못 할 것이다. 그러나 선풍기는 돈만 낸다면 언제 어디서든 바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라서, 자전과 공전과 달과 해의 우연에 의존하는 자연과는 또 달랐다. 만약 자연이 바람을 만들어내지 못 할 적에 선풍기가 전력원을 찾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둘의 우위는 쉽게 가릴 것이 아니다.


나는 오직 창과 선풍기 사이에 가만히 서서 등과 배를 바람으로 적시면 그만이다. 두 바람은 나를 골고루 버무려주었고 나는 여름인 것도 잊고 피부를 뾰족 돋았다.

작가의 이전글 너무 가까워진 종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