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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Jul 30. 2022

톺다

"톺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이다. 사전적 의미는 여럿인데,


톺다1

(1) (사람이 어떤 곳을) 무엇을 얻으려고 샅샅이 훑어보며 찾다.

(2) (사람이 주로 가파른 곳을) 오르거나 내려오려고 매우 힘들게 더듬다.


톺다2

(1) (사람이 헛기침이나 큰 숨을) 억지로 기침을 하거나 숨을 쉬어 내뱉다.

(2) (사람이 가래를) 뱉기 위해 속에서부터 끌어올리다.


톺다3

(사람이 삼의 끝을) 삼을 삼을 적에 가늘고 부드럽게 하기 위해 톱으로 훑다.


셋 다 타동사이고, 발음도 [톱따]로 같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 가져왔다.


처음 읽었던 건 어느 소설에서였다. 무슨 한국소설이었는데, 꽤 화창한 시간에 버스 타고 귀가하는 길이었고, 왼쪽 맨앞자리에 앉아 펄럭이다가 발견했다. 단어가 예뻐서 곧장 사전을 켜고 뜻을 찾았다. 톱따. 톱따. 오묘한 울림이 있는 단어였다.


신기한 것은 의미를 찾기도 전에 얼추 알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문장의 맥락 덕분이기도 했지만, 톺다라는 단어를 읽는 순간 나는 달팽이나 전복 같은 연체동물을 생각해냈다. 가만히 기어다니면서 더듬이로 바닥을 톺 톺 훑는 모습이 연상되었고 대강 들어맞았다. 말은 때로 신비한 기운이 있다.


톺톺거리는 귀여운 의태와 함께 또 마음에 들었던 점은 이 단어가 ㅌ과 ㅍ이라는 흔치 않은 자음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둘 다 거센소리인지라 용처가 마땅치 않은데,  둘을 뭉쳐놓으니 참으로 귀여운 단어가 되고 말았다. 마치 세상에서 소외받던 둘이 낑낑 뭉쳐 고유의 매력을 뽐낸다는 소년만화 같은 발상이라서 더욱 애정가는 면이 있다.


아쉽게도 자주 쓰이는 말은 아니다. 널리 알려진 단어가 아닌데다가 다른 어미가 붙으면 ㅌ과 ㅍ이 분리되어 드센 외국어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ㅌ과 ㅍ이 눈물겨운 춤을 추는 이 단어가 조금이라도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단순한 자모가 이리저리 결합해 세상에 선보이기까지 적잖은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을 보지 못 하고 있는 단어들을 한 번 톺아보는 건 또 어떠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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