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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Sep 04. 2022

그림자 시술

그림자가 영구적으로 없어진다. 모든 것이 실재함으로써 존재감을 뽐내던 한 시기의 패션은, 온갖 것을 경험하고 나서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하였다. 모두가 가지고 있으면 아무도 가진 것이 아니라는 신념 아래 귀걸이를 빼고 목걸이를 빼고 팔찌를 빼고 타투를 빼고... 상의 하의 속옷까지 벗어 던진 후에는 자연법칙마저 냅다 던지려 했다. 그중 만만한 것이 바로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날 때부터 있다가 죽어서도 봉분 따위 형태로 모습만 바꿀 뿐인데, 그것을 없앨 수 있다면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 무생물 분자 원자와도 구분되는 개성의 극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패션 업계는 돌풍에 휩싸였다.


그림자를 없앨 때는 주기적인 시술뿐만 아니라 훈련도 요구된다. 그림자는 존재에 부수하는 것이라 자신의 존재가 부각될 때 재차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피시술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세상이 나를 모른 체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목받지 않는 옷을 입고 주목받지 않는 행동을 하며 주목받지 않는 업무를 하고 주목받지 않는 성과를 이룰 것.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일상과 같은 일이었다. 모두들 시술이 어렵다 했지 훈련이 어렵다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술과 훈련 모두 끝나고 나면 평생 그림자 없는 사람이 된다. 아무리 길쭉한 빛이라도 당신을 맞고서는 어떠한 어둠도 만들어낼 수 없다. 이제 부존재로써 존재를 증명하는 당신은 없다. 당신의 존재는 오로지 당신 고유의 영역으로써 내보여야 한다. 사람들은 최소한의 어둠조차 거부한 채 자신을 더 어필해갔다. 광명을 온전히 누린다 생각했고 빛 받지 못 하는 모든 것들을 혐오했다. 세상도 맞춰 움직였다. 어둠에 주목하는 기제는 덜 떨어진 복지제도 말고는 없었다. 미디어고 정부고 할 것 없이 짝반짝한 삶에 집중하고 그림자는 무슨 고대의 유물인 양 서프라이즈를 자아냈다. 와중에 그림자가 만병의 근원이라느니 사람과 동물을 구별하는 것은 그림자라느니 그림자의 악명을 떨치게 하는 일련의 운동이 있었고 덕분에 그림자 시술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었다. 정부가 오랜만에 제 일 한다며 정권 지지율도 올라갔다. 해피해피 윈윈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는 금방 나타났다. 먼저 그림자를 없애기 위한 훈련이 문제가 됐다. 해당 훈련은, 그림자를 없애고 난 후와는 정반대로 온갖 어둠을 뒤집어써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훈련할 때는 막상 괜찮았던 사람들이 시술을 다 마치고 나서 심각한 정신질환에 시달렸다. 그림자가 갈 곳을 잃고 사람을 삼킨 것이다, 라고 혹자는 평했다. 다음으로는 그림자를 없애지 못 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문제가 됐다. 자연법칙에 거스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혐오를 달고 살았고 당사자들 또한 자신의 그림자를 혐오하게 됐다. 밝음을 독점하지 못 하는 몸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었고 그것이 도리어 그림자에 대한 상기의 믿음을 강화시켰다. 그것 봐, 그림자를 달고 사는 인생은 불행해, 그림자인에게 허락될 것은 오직 불신과 연민뿐이야.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짙어져 갔다.


그림자 해방을 외치던 인플루언서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그림자 혐오로 비롯된 살인(자살을 포함한다)사건이 기승을 부리자 소수의견이 그제야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림자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시절, 어둠이 걸림돌이 될 때도 있었지만 브레이크로서 삶의 흥분을 적절히 조절하기도 하였다. 브레이크를 뽑아버린 자동차는 목적지에 빠르게 도달하였지만 동시에 죽음에도 빠르게 도달하였다. 달리던 자들은 사소한 사고에도 크게 휘청거렸고 달리지 못 하는 자들은 쌩쌩 달리는 남들을 보며 본인과 세상을 증오했다. 윈윈이라 착각했던 세계는 사실은 루즈루즈였다. 그림자와 행복이 인생의 앞뒷면으로서 일체였던 셈이다.


이윽고 반성한 몇몇 사람들이 그림자를 되찾자는 운동을 전개 중이다. 이미 없앤 그림자를 다시 만들기란 분명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빛만큼이나 어둠이 중요한 때가 있고 편식 없이 모든 순간을 누려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어리석음을 교화시켰다. 그림자도 결국 우리 모두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림자 재시술이 이른 시일 내에 가능해지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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