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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Aug 20. 2022

어느 좀비 바이러스

1.

"이게... 치료가 돼요."


"예?"


"치료가 돼요."


"치료가 된다고요?"


웅성웅성. 안경을 고쳐 올리고 말을 이어갔다. 사진을 몇 장 골라 내밀었다.


"이게 한 달 전, 그러니까 감염된 직후로 추정되는 시점에 찍은 사진입니다. 우리가 아는 모습이랑 다를 게 없죠. 공격적이고 피칠갑이고... 맨날 쾅쾅거려서 유리에 금이 갈 정도였어요."


헝클어진 머리, 부릅 뜨고 흰자까지 드러낸 안구, 멋대로 움직이는 안면근육과 균형을 잡지 못 하는 팔다리. 온갖 진부한 클리셰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다시 건넨 사진은 달랐다.


"그런데... 한 일주일 뒤부터 공격성이 잠잠해지더니, 열흘째쯤 되니까 겨우 기어다니는 거예요. 연구원 말로는 비쩍 곯은 것 같더랍니다. 먹을 게 없어서 그러겠거니 싶어서 내비뒀는데 갑자기 유리문을 두들기더래요. 울면서."


"울면서요?"


"예, 울면서."


"울면서... 울면서 뭐래요?"


"살려달라고. 자기 좀 꺼내달라고."


"말을 한 거예요? 살려달라고?"


"예... 말을."


"그렇게 들린 거 아니고 진짜로?"


"예... 소통을."


비통한 침묵에 휩싸였다. 침묵을 깨고 브리핑을 이어나갔다.


"지금 1인실에 격리돼 있습니다."


"살아있단 말이에요?"


"예. 어떻게 죽입니까... 사람을."


누구도 제일 원치 않던 단어가 마침내 등장했다.



2.

흔한 좀비 바이러스라 생각했다. 이유 없이 화난 좀비들은 제 몸 하나 주체 못 하면서 인육에는 진심이었다. 물어뜯긴 사람들은 운 좋으면 출혈로 죽거나 대개는 새로운 숙주가 됐다. 영화로도 평 받기 힘들 뻔한 전개였다.


그러나 정부는 몇 가지 의심을 가졌다. 첫째, 사망자가 거의 없다. 좀비 때문에 죽는다면 대부분 살점을 먹히다 과다출혈이나 쇼크로 죽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을 마감한 사람은 거의 없고 좀비나 되기 일쑤였다. 둘째, 좀비가 생각보다 공격적이지 않다. 비감염자를 보면 신나게 달려드는 것은 똑같으나 일단 한 번 무는 데 성공하면 이상하리만치 무관심해진다. 고기 그 자체가 목적이었으면 뼈까지 쪽쪽 빨아먹어야 정상인데 한 입 앙 물고는 식욕 뚝. 무슨 백화점 시식코너도 아니고. 덕분에 시신 되는 사람은 적었으나 좀비 되는 사람은 늘어서 이걸 좋아해야 할지 한창 고민했단다.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던 와중 운 좋게 좀비 하나를 생포할 수 있었다. 연구실 막내를 미끼 삼아 좀비 여럿을 유인하고 실내에 가장 먼저 들어온 좀비를 그물로 생포했다. 공포를 짓누른 막내의 표정 뒤로 선임들은 싱글벙글했고 막내는 일이 다 마무리되면 자퇴서를 쓰기결심했다. 여튼 2주 가까이 격리시켜 관찰한 결과 그는 완치가 됐다. 항생제 하나 놓지 않았다. 공포 어린 표정의 주인공은 이제 전직 좀비 현직 사람인 아무개가 됐다. 드문드문 기억을 읊는 그의 진술 위로 누구의 한 마디가 짧고 굵게 주행했다.


"좆됐다."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우리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우리는 좆됐다.



3.

좀비 바이러스는 그냥 바이러스였고 좀비는 그냥 감염 증세였다. 감기가 기침 콧물로 새 숙주를 찾듯 좀비 바이러스는 사람을 무는 것으로 새 숙주를 찾았다. 숙주가 죽어버리면 안 되니 적당히만 물었다. 깊게 물어버린 바람에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고에 애도를 표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듣는 약은 따로 없었지만 웬만하면 완치됐다. 그게 진짜 환장할 부분이었다.


좀비가 들끓자 클리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당연하단듯 좀비를 죽이고 다녔다. 머리를 박살내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는 얘기를 어디서 또 들었는지 집요하게 머리 노려 명중시켰다. 사람이 여럿 모인 곳에서는 자경단을 조직하여 보이는 족족 두부를 부수고 다녔다. 탄핵 집회 이후로 이렇게 한마음 한뜻인 국민들은 처음이었다. 군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투입된 실전에 열성을 보이는 병사들이 많았다. 장성들도 이런 저런 작전을 구사해가며 적잖은 성취감을 누렸다. 사람이 아니니까.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나 아니었다.


밀린 죄책감은 꼭 이자 쳐서 몰려왔다. 좀비가 겉보기에는 미치광이처럼 보여도 생각하고 느끼는 건 사람이랑 다를 바 없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됐다. 좀비들끼리 있을 때에는 굳이 공격성을 드러낼 필요가 없기에 사회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좀비들끼리 자기소개를 하고, 어떻게 감염됐는지 얘기했다가, 자기가 누구누구를 물어서 통쾌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는 식으로 집단상담을 개시했더란다. 이 정도면 사람 중에서도 괜찮은 사람 아닌가. 우리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지금까지 학살하고 다닌 것이다.



4.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듯 보였으나 곧 괜찮아졌다. 그것은 대책회의에서 정확히 예상한 바였다.


"처벌 여부는 나중에 정하기로 하고... 일단 사실대로 이야기합시다.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있어도 죽인 행위를 후회하는 사람은 몇 없을 겁니다."


사람들은 정부도 몰랐으니 우리라고 알았겠냐, 하는 생각이었다. 누군가를 탓하기에는 눈앞의 사태가 너무 급박해보였다. 한꺼풀 벗기면 진실이 있었지만 그거야 알 바 아니었다. 어차피 미디어에 가장 잘 길들여진 세대였다.


오히려 정부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지 못 하고 좀비는 평생 좀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좀비가 사람으로 돌아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사람 많지 않았다. 본모습보다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었고, 그 겉모습은 세상의 모든 악을 뭉쳐놓은 것마냥 추했다. 사람들은 죄책감을 넘어 선과 정의의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 사람으로 남아 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노래했다. 아아, 망치가 동물의 피로 얼룩질 때 스며드는 손끝 짜릿한 쾌감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 좀비 사냥은 속세의 좋은 풍습이 되었다.


숙주가 이런저런 이유로 줄어들자 바이러스의 전파는 급격히 약화됐다. 인류는 또 다시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말았다. 모처에서는 인간성에 크게 도움 된다 하여 일부러 사람을 감염시켜놓고 힘을 모아 사냥하기도 한다더라. 굳이 박멸시키지 않고 유흥거리로 적정량 남겨두었으니 호모 루덴스라 불려도 더 이상 부족함이 없다.


이제 인류는 다음 바이러스가 어떤 모양새일지 궁금해 하고 있다. 머리가 잘려도 살아남는 바이러스는 어때? 장기가 모두 몸 밖으로 분출되는 바이러스는 어떨까? 나는 손발이 점점 커지다가 풍선처럼 터져버리는 바이러스가 좋아! 무궁무진한 상상력에 자연은 또 뒤아가기 바쁜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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