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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Oct 01. 2022

질병청소기

    "OOO씨."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적당히 나이든 의사와 초췌한 분위기의 아이가 있었다. 앞의 진료가 아직 안 끝난 건가, 했는데 자리에 앉으시란다. 쭈뼛거리며 아이 옆 둥근 의자에 앉았다. 그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이후로 평범한 문진이 이어졌다. 어디가 아프십니까,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지병은 없으신지요, 가족력은 어떻게 되실는지 등등. 평범한 몸살이라 따로 첨언할 것 없이 몸살이요, 어제부터요, 딱히요, 없어요 등등을 읊었고, 의사가 진단서를 투닥거리는 시간 동안 아이에 대해 하나라도 알아내려 애썼다. 겉모습은 의외로 말끔했다. 지겹게 입은 옷은 아닌 듯했고 신발은 흙 한 번 밟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반듯한 원단 너머의 신체는 온갖 불행을 떠안은듯 어두웠다. 고개를 숙인 모습은 조금이라도 음영을 더 지게 만들려는 자기파괴적인 시도로 읽혔다. 나는 내 그림자마저 뺏길주위를 자꾸 두리번거리더랬다.


    "진료 끝났습니다. 치료실로 가시죠."


    "치료실요? 입원하는 건가요?"


    "아니요. 금방 끝납니다."


    내과에서 치료실이라는 말도 생경하거니와 그것이 입원실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몹시 혼란스러웠다. 더욱 혼란을 가중시킨 것은 내가 나가는데 아까 그 꼬마도 따라나온다는 사실이었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성큼성큼 걸어가는 내 보폭을 작은 발들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미행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이런 귀신 같은 곳이 있나, 생각하며 치료실에 들어섰다.


    침대 하나에 의자 하나. 제대로 된 문짝도 하나 없이 커튼 걷어 들어간 치료실은 차라리 안마시술소라 말하는 것이 타당할 정도로 퇴폐적이었다. 도대체 나한테 뭘 할 셈이지, 의심할 새도 없이 간호사는 나에게 와식을 명령했다. 쭈뼛 양팔을 몸에 딱 붙인 채 긴장하고 있었는데, 뒤늦게 들어온 아이가 의자에 걸터앉는 게 아닌가.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싶어 간호사를 찾으니 그는 또 행방불명. 일어나려 하니 아이가 양손으로 가볍게 내 몸을 또 밀침. 여긴 불법 중에서도 최고로 불법인 곳인가 몇 번을 더 당황했다.


    이윽고 아이는 내 심장께에 손을 얹고 잠깐을 떨었다. 부들거림은 점점 심해졌고 끝에 가서는 온몸에 땀을 뚝뚝 흘렸다. 손을 떼고 몸을 가다듬는데 심하게 휘청거려 급하게 그의 몸을 부축했다. 불덩이 같아. 도대체 이 아이가 지금 한 게 뭐고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지 납득할 거리가 없었다. 곧 간호사가 들어와 끝나셨냐고 물은 뒤 이제 수납하시면 됩니다, 하며 아이를 잡아채 다시 진료실로 질질 끌고 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노예였다. 그 모습은.


    "처방전 없나요?"


    계산 끝나고 그냥 가라길래 물었다. 몸살이면 3일치 정도는 지어주지 않나?


    "다 나으신 거 아니었요?"


    "네?"


    "치료실 다녀오신 거 아니었어요?"


    "가서 한 게 없는데요?"


    "청소 받으신 거 아니었어요?"


    청소? 요즘 의학계 은어인가?


    알고 보니 이런 것이었다. 자기의 손끝으로 남들의 질병을 흡수할 수 있는 불행한 기질을 타고난 아이들이 있는데, 병원에서 그들을 붙잡아 준만병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연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라서 그 질병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완벽히 동일한 정도로 아이의 몸에 통증을 가한다. 이를 처음 발견한 괘씸한 작자들이 마치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질병청소기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얘기다. 그놈의 치료는 만민-몇 명을 위한 질병 몰아주기 게임이었다.


    그럼 그 아이들이 치료하다 죽어버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세상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함부로 컷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견딜 수 있는 통증 총량을 측정하고 주기적으로 컨디션을 확인하여 투입 여부를 결정한다. 중증 환자를 치료할 경우 몇 주 이상의 치료를 싹 비워두고 최상의 상태를 마련하며, 치료 후 곧장 수술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쳐둔다고. 그냥 아픈 사람한테 그렇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 본인이 덜 아플 방법이 있다는 걸 깨달은 병자들은 하나 같이 이 방법을 선호했다고. 악마라도 이런 속삭임은 주저할 것이다.


    말마따나 나의 몸살은 완쾌가 돼서 당장 다음날부터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개운하게 팔 벌리며 일어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저녁 운동으로 건강함을 한껏 과시했다. 그 대가는 분명 운이 지독히도 나쁜 어느 약자의 몫인데, 신속한 일상은 이 사실을 자주 잊게 하고 가끔은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주었다. 고통이 나에게 없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겸손이라 포장해주니까.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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