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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Sep 29. 2022

서울원전론

1. 조그만 국토에 5000만 인구가 산다는 것도 놀라운데 와중에 수도권에만 2600만, 서울에만 1000만이 살고 있으니 참으로 기막힌 노릇이다. 고도성장을 위해 첫째에게만 모든 자원을 몰빵시킨 결과일 텐데, 덕분에 대외적으로는 명실상부한 세계 도시로서 위상을 떨치고 있는 반면 내국인들에게는 그에 못지 않은 악명도 선사하고 있다. 매년 심각해지는 대기질 문제, 출퇴근 시간만 되면 뛰어가는 게 더 빠른 시내도로, 극약처방이 아니고서는 멈출 일 없는 집값 상승세 등 치안과 위생을 제외한 모든 도시 문제를 모아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늘날 서울의 존재는 문제적이다. 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재하지 않았음을 안다.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보내고, 지방 도시를 묶어 메가 시티로 재구성하는 등 서울의 부피를 죽이는 작업은 적잖게 시도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은 한국의 두뇌이고 모든 사람들이 서울의 주름에나마 자리잡으려 애쓰고 있다. 이제 우리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서울공화국에서 벗어날 길이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서울 지향은 복합적인 욕망이기 때문에 꼬인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그냥 실을 잡아다 싹둑 잘라야 한다.


2. 서울원전론은 서울의 거품을 충격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수도 한복판에 원전을 설치하고 스스로 위협에 노출되도록 함으로써 시민들과 기업들을 강제로 서울 밖으로 밀어낼 수 있다. 밀려난 인구가 풍선효과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지만 서울 주위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 자체가 문제를 해결할 좋은 첫걸음이 된다.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 자연히 공해나 교통, 주택 등의 문제가 해소될 것이고 이참에 서울의 도시계획을 다시 철저하게 수립해서 지난번 폭우 때와 같은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개선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서울원전론은 서울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부수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원전 부지의 안전성 측면에서도 꽤 타당한 주장이다. 포항 지진에서 보았듯 한국은 유독 원전 주변에 활성단층이 많이 위치하고 있다. 반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는 선캄브리아기 암석으로 구성된 안정지괴여서 다른 지역에 비해 지진의 규모와 빈도가 낮은 편이다. 또한 서울 한복판에 강이 위치하고 있으니 냉각수를 끌어오는 데에도 문제가 없다. 바닷물을 쓰다가 해양생물이 발견돼서 발전소가 정지하는 일도 있다고 하니 담수를 쓸 수 있는 것이 오히려 축복이라 할 수 있겠다.


4. 지방자치 측면에서의 이점은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상술한 대로 서울 인구가 다른 지역으로 흩어짐으로써 지방의 인구소멸을 방지할 수 있다. 제아무리 좋은 자치제도가 있어도 주민이 없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주민이 유입되면서 정치적 욕구가 배태되고 그것이 실현되면서 다시 인구가 늘어나는 선순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서울원전론은 서울의 생명력을 다른 지역으로 나누어주는 상생의 과정이다. 둘째, 서울 시민들에게 에너지 용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공장을 제외한 민간의 에너지 소비는 수도권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그 에너지를 발전하기 위한 시설은 모두 서울 밖에 다. 석탄화력발전소는 인천, 충남에 몰려 있고 원자력발전소는 경북, 전남 등에 위치해있다. 발전소 건설에 따른 피해를 벌충하기 위한 보상책이 마련되어 있겠지만 그보다 바람직한 것은 쓰는 사람이 그 대가를 온전히 치르는 것이다. 수도권 시민들의 안녕을 위해 비수도권 시민들이 대신 비용을 치르는 불합리한 구조를 이제는 교정해야 한다. 수도권 시민에게는 책임을, 비수도권 시민에게는 자유를 한껏 선사하리라.


5. 인구가 줄면 알아서 서울 인구도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일본도 인구감소 과정을 겪고 있는데 지방 인구만 급격히 줄었고 최근까지 수도권 인구는 도리어 증가했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이 그나마 넉넉한 삶을 누리기 위해 지방을 떠나 수도권으로 몰리는 것이다. 세계에서 유례 없는 속도로 인구가 감소할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둘도 안 되는 내 자식 성공시키기 위해 사람 많고 건물 많은 서울행 티켓을 끊는 데 주저함이 있겠는가. 서울공화국은 냅두면 냅둘수록 더 심해지기만 할 것이다.


6. 전쟁 나면 큰일이기는 하다. 안 그래도 청와대며 국회며 대사관이며 대기업이며 다 몰려 있는 판에 원전을 지어서 탐스런 먹잇감을 제공하니 내가 이북이었어도 박수칠 일이다. 그러나 원전으로써 이런 중요 시설들을 국토 전반에 퍼뜨려놓을 수 있다면 역으로 안보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서울에 중요 시설이 모두 밀집해 있는 지금 상태도 썩 안전한 상황은 아니다.


7. 그러니까 서울에 원전을 짓자. 황당무계한 정책이 문제일지 황당무계한 상태가 진정 문제일지 잘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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