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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Oct 04. 2022

법칙화

적당한 추론 능력을 가진 사람이 무슨 함수 하나를 보게 되었다. 1을 넣으니 2, 2를 넣으니 3, 3을 넣으니 4가 나왔다. 당연하게도 그는 주어진 함수가 y=x+1이라 생각했고 아니나 다를까 4를 넣으니 5가 나왔다. 그의 추정은 기존 데이터를 잘 설명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데이터를 예측하는 데에도 성공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y=x+1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우리가 합리적으로 셀 수 있는 범위에서는 y=x+1인 것이 맞았다. 그러나 어떤 임계를 넘어가면 함숫값이 들쭉날쭉하는 것이었다. 10000을 넣었더니 9999가 나오고, 20000을 넣었더니 20002가 나오는 식이었다. 사람들이 그쪽까지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 하고, 자기들이 보고 들은 범위에서만 검증해 섣불리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이후 y=x+1의 타이틀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혹자는 여전히 쓸만한 범위에서는 법칙이라 할 만하니 이를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반면 하나라도 반례가 있다면 더 이상 법칙이 아니라며 그냥 무작위라 불러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괄호로 단서를 달아 y=x+1(범위)라 적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딱히 아름답지도 않고 범위를 조사하는 것도 힘이 드는 일이어서 간단히 기각됐다. 사람들은 흑묘와 백묘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전자는 경험적으로 유용한 것을 일단의 법칙으로 만들고,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함수 그 자체의 엄격함은 이론이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다소 훼손될 수 있다. 그 정도의 노이즈는 수학뿐만 아니라 물리학, 화학, 심지어 사회과학에서도 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론은 이론으로, 현실은 현실로 보고 두 세계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후자는 엄밀하지 않은 것은 경험적으로 유용할 수도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유용성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껏 1, 2, 3 등을 써왔고 기껏해야 100 정도를 넣어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앞으로도 이만한 수만을 다룰 것이라는 사실을 보장하지는 않으며, 행여 우리가 10000을 다루게 될 적에 전례없는 사태로 큰 혼란을 겪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당장의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법칙이라는 이름을 버리자고 주장한다.


두 갈래의 주장은 서로 다른 시기집권에 성공했다. 전자는 크나큰 역사적 변천 없이 오랜 기간 이어진 평시에 빛을 발했다. 유사(pseudo) 법칙으로서 현실 세계를 재구성해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안정적인 시기에 비용을 절약해 성장을 가속하는 데 크게 일조하였다. 반면 위기의 시기에는 후자가 득세하였다. 예측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져 법칙을 믿기보다는 비용을 들여 직접 값을 도출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비정상의 패턴을 분석하는 등 법칙을 정교화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양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역사를 구성하였다.


한편 뉴노멀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비정상이 점차 새로운 정상으로 자리잡고 있어, 만성적인 위험을 법칙화하자는 절충론이 대두되고 있다. 모든 위험을 비용 들여 낱낱이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적절히 타협할 수 있는 에서 합의를 도출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위험을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후자의 입장 받아들인 것이고, 또한 현실적인 고려를 가미하였다는 측면에서 전자의 입장도 받아들인 것이다. 바라지 않는 위험의 만성화는 모든 이들에게 위기감을 심어주었고, 두 입장이 극적으로 화해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부분적 y=x+1(범위)의 입장으로 회귀한 것으로서 이를 주장한 소수의 선견지명에 후대 인류는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언제든 격랑의 시기에 진흙 속 진주가 드러나는 법이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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