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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Nov 08. 2022

예비군 훈련

오랜만에 걸치는 뻣뻣한 섬유만큼이나 나의 몸은 굳고 경직되었다. 전역한 지는 어언 3년이나 되어가는 마당에 많은 일의 원흉인 코로나는, 적어도 국방의 의무라는 중과된 책무에서는, 그 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일장일단이라 칭하기에는 일단이 거의 만단이지만, 오늘은 코로나가 내 앞에서 엣헴 하고 고개를 치켜들어도 쌍욕보다는 피식하는 욕으로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 덕분에 군대물은 빠르게 빠졌고 생활패턴은 주르륵 녹아내렸다. 예비군이라는 정신적 무장을 하는 데 부족함뿐인 여건이었다.


9시까지 들어오면 된다 했건만 사법처리가 무서워 5시 반에 몸을 일으켰다. 느릿느릿 준비해도 6시 반, 도착했을 때는 8시 반, 정작 시작은 9시 반이었다. 도저히 할 것이 없어 오랜만에 게임을 틀었다가 업데이트 용량(약 4GB)에 좌절, 냅다 브런치에 글을 적기에는 보고 느낀 게 부족하여 좌절. 결국 뉴스나 뒤적거리다 드디어 9시 반이 되었고... 조 편성 어쩌구저쩌구... 이동하고 나서는 또 영상 시청... 뛰어댕기고 우다다다 쏘고... 넓게 퍼진 탄착군에 의외로 실망... 그리고 3시 반, 수고하셨습니다. 우물쭈물일 줄 알았던 군 행정은 너무나 신속하고 정확했다. 나는 부대 밖의 사람이라는 것, 그들과는 철저히 비즈니스 관계일 뿐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작금의 긴장은 기우였다. 모든 일에는 담당자가 있고, 모든 일에 내가 나서서 걱정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슨 쓰잘데기 없는 감정이 또 남았는지,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위병소를 짠히 바라보기도 하고, 지하철에 올랐을 때 위화감 어린 시선을 온몸으로 느끼며, 무뚝뚝한 현역 군인을 연기하듯 냉큼 자리에 앉지 않고 민간인들이 편히 가는 모습을 그리기도 하였다.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 했으나 온갖 감정적 부침을 비롯하여 사람들과 진하게 어울린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라서, 외로움이 적실 때 군대를 기억했던 순간은 많고 많았다. 이제는 연락도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을 추억하며, 나와 면이 닿았던 수많은 인연들이 앞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마지막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옹기종기한 마음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것 또한 겨우 철든 척하는 예비군 2년차의 읊조림 중 하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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