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antasia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gom Nov 29. 2022

겉과 속

"뭐야! 마시멜로 어디 갔어? 이 정도 양이면 초코파이가 아니라 초코빵이잖아! 빵 부분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이건 핫도그가 아니야... 나는 소시지를 먹으려 한 거지 빵을 먹으려 한 게 아니야... 이렇게 작은 소시지는 인정할 수 없어... 크고 아름다운 것을 기대했다고...'


샌드류 음식의 본질은 무엇인가? 당연하게도, 그것은 속의 내용물이다. 속을 두르는 겉은 일종의 보조재로서 기껏해야 약간의 간으로 속의 풍미를 더하거나 속을 안전하게 보관, 운송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사람들이 위의 사례에 공감하는 것은 제 분수도 모르는 주객전도가 일으키는 분노 덕분이다. 주인장인 속이 한낱 손님인 겉에 압도당하였을 때 우리는 화가 나고 슬프다. 이러한 전복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 더욱 그렇다. 우리의 역사마저도 한때는 껍데기가 알맹이를 억압했었다.


그렇다면 겉과 속을 뒤집는 것은 어떤가? 많은 사람들은 맛의 본질이 속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윤 상 가능하다면 겉을 줄이고 속을 늘리는 것이 판매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조그만 빵을 많은 양의 크림이 두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물리적 가능성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고 관념적으로 생각한다면, 이 음식은 상상만으로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어, 일반 크림빵은 쳐다보기도 싫을 지경으로 만든다. 물론 겉과 속의 최적 비율이 대칭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일반 크림빵이 7대3의 비율로 맛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여 3대7의 비율이 월등히 더 맛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5대5 미만의 영역은 미지의 세계이고 어떤 것이 황금률에 해당할지 확신할 수 없다. 2대8, 1대9, 심지어 0대10까지 우리의 입맛에 들어맞을 수 있다.


혹자는 반론을 제기한다. 겉과 속을 반전시키더라도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 하는 사례가 숱하다고 말이다. 잊을 만하면 오르내리는 수박바 논쟁을 예시로 들어보자. 일각에서는 수박바의 수박 부분보다 껍질 부분이 더 맛있다 주장하여 제조사가 껍질 부분만 판매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래서 "거꾸로 수박바"라는 이종제품을 출시했는데, 잠깐 반짝하더니 지금은 찾기도 어렵다. 누드 빼빼로의 사례도 비슷하다. 누드 빼빼로는 일반 빼빼로의 초콜릿과 과자 부분을 반전시킨 것인데, 거꾸로 수박바와는 달리 시장에서 완전 퇴출되지는 않았지만 그 영향력이 일반 빼빼로를 압도할 수준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일반 빼빼로와 누드 빼빼로가 시장에서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몰지각한 주장에 반박하겠다. 첫째, 거꾸로 수박바는 겉과 속의 정치 투쟁 과정에서 파생된 사례이다. 겉과 속의 평가는 순전히 자의적이기 때문에, 음식 요소 간 경쟁 과정이 반드시 수반된다. 대개는 겉과 속의 구분이 명확해서 싸우기도 전에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으나, 가끔은 구분이 모호해 싸워서 승패를 가리는 경우가 있다. 수박바는 후자의 사례이다. 수박바의 수박 부분은 멜론맛, 껍질 부분은 딸기맛이라서 풍미적으로 동등하다. 여기서는 경험적 실험으로 우위를 가릴 뿐이어서, 껍질이 본질이라는 정치적 주장에 대응한 새로운 실험이 배태되고, 그것이 시장에서 좌절되는 과정이 드러났다고 보아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껍질이 겉이고 수박이 속이라는 사실이 마침내 밝혀진 것이므로, 거꾸로 수박바가 겉과 속을 반전시킨 것이라는 전제가 무력해진다.


둘째, 누드 빼빼로는 겉과 속의 구분이 애당초 어렵다. 빼빼로는 겉이 과자고 속이 초콜릿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본디 과자를 초콜릿이 감싸고 있는 형태라서 "겉과 속"이라는 명명/지시적 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각각의 양을 살펴보더라도 의외로 과자 부분이 크지 않아 초콜릿이 칠해지지 않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근사 5대5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드 빼빼로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빼빼로의 온 부분에서 초콜릿과 과자가 일정한 비율을 유지하도록 만들어 기계적 5대5를 보존하였다. 일반 빼빼로와 누드 빼빼로의 차이는 결국 첫 식감의 차이일 뿐이므로, 취향 분포의 균일성을 가정한다면 일반 빼빼로와 누드 빼빼로는 시장에서 동한 점유율을 가져야 한다. 실제로 2020년 기준 오리지널 빼빼로의 매출 비중은 22%, 누드 빼빼로의 비중은 15% 차이가 크지 않다.


겉과 속을 뒤집는 발상은 단순한 재미 이상으로 우리에게 크나큰 효용을 안겨줄 것이다. 크림을 한 입 크게 머금고 후식으로 빵을 깨무는 식사를 상상해보라. 당신은 세로토닌과 도파민에 겨워 함박 웃고 있다. 기업들도 음식의 본질을 치열하게 탐구하여 속을 늘리는 경영방침을 적극 고려해주기 바란다. 우리도 이제는 알맹이를 먹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코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