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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Dec 31. 2022

2022, 2023

기둥을 붙잡고 우물쭈물하였다. 자신의 영역 이상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면서도 섣불리 내딛지 않았다. 익숙함에 안기는 것은 비용 없는 일이다. 해지고 빛 바랜 이불이라도 당장은 버틸 만하다. 그러나 기후는 점점 냉혹해지고 생존을 위하여 - 실존이라는 말은 아직 민망하다 - 새 도포를 마련해야 했다. 값 치르는 일은 지극히도 무서운 일이다.


성큼성큼이라는 말을 경외한다. 쭉쭉 내뻗는 다리를 동경하는 주제에 본인의 걸음은 사소하다. 상대속도를 가늠하는 본인은 몹시나 밉다. 그러나 언젠가는 저리 되어야 한다는 무게감은 미움 못지 않은 두려움으로 환전된다. 그것은 곧 마음 속 문지방을 또 두텁게 만들어 이윽고 바깥으로 낸 문을 바늘구멍으로 만든다. 사소한 틈 앞에서 위기감과 체념을 잰다. 문밖으로 나서는 일은 여러 감정에 맞서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낭만과 이상이 비대해져 감을 느낀다. 목격하지 못 한 만큼 미지는 환상으로 점철돼 있다.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낭만 속 현실과 현실 속 마음은 이극(極)이라면 가까워질 힘을 잃었는데, 다행히 동극(同極)이라도 멀어질 힘 역시 잃은 듯하다. 방치된 안정 상태에서 오랜 시간 편안함을 느낀 바, 나만이 물리세계에 존재하지 않은 듯해 우쭐하다가도 추락한다. 땅 붙어 사는 한 힘은 일찌감치 내 곁에 있었던 것이다.


이젠 손이라도 움직이고자 한다. 무거운 중력을 이겨내고 팔을 곧게 들어서, 부끄러운 손이라도 활짝 펴보이면 그에 맞서 누가 가위를 내든 보자기를 맞춰주든 할 것이다. 깍지의 황홀경은 온몸을 떨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 힘을 주는 것은 또 다른 힘이기에, 다른 영역이라도 끌어와서 몸을 움직인다면 동공 속 세계는 또 어지러이 움직이겠지. 그때의 멀미만큼 그리운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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