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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Jan 28. 2023

어려운 머리칼

곱슬머리의 최대 단점은 매일 머리가 어느 방향으로 뻗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은 오른쪽으로 고이 휘었던 머리가 내일은 왼쪽으로 나대질 않나, 겨우 좌우 머리를 아름답게 가를 6:4 균형을 잡았더니 삽시간에 5:5로 번지질 않나... 한때 고데기로 지지기도 하고 가끔은 볼륨 매직이라는 초강수두어봤지만 몇 달 안 가 머리는 또 나를 놀려먹는다. 누구는 머리 감고 드라이만 대충 넣어도 매력 있는 머리가 나오는데, 내 머리는 어째 죽으라는 데가 멀쩡히 살고 살라는 데는 픽 죽어버리고. 머리가 쉬이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유전자 등이 타고난 덕이겠지만 아쉬움은 쉽게 죽지 않았다.


그러나 억지로 이것저것 시키는 일은 누구에게나 고역일 거라, 어느 새부터는 머리님이 허용해주시는 대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괜히 특정 부위에 뜨거운 바람을 넣거나 약품을 치대지 않았고 오늘 특별히 허락해주시는 것 같으면 조심스레 입혀 보았다. (물론 이런 시도들도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솔직히 귀찮아서 그랬던 것도 없지 않아 있으나, 집착을 놓아야 마음 편하다는 장주 선생의 오랜 가르침을 좇는 것이기도 해서, 정말 머리 모양과는 별개로 마음은 온화해졌다. 못 될 때는 그럼 그렇지, 잘 될 때는 세상에 감사합니다 겸억한 말들을 수시로 되뇄고 못 된 일에 화낼 것이 아니라 잘 된 일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인세의 상식도 덤으로 얻었다. 날 때부터 볶아진 까만 머리는 20여 년 내 속을 들들 볶고 나서야 진정한 친우가 되었다.


방치, 라고 비판하면 할 말 없겄다. 낑낑댐의 비용과 손질된 머리의 효용을 저울질한 결과 후자가 힘을 못 써서 오늘날에 이르렀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사소한 우연에도 즐거워하는 기질은 못된 머리가 가져온 것이니 뻔질나게 손질됨이 중요하겠는가? 다만 오늘은 머리가 유독 만족스러워 이렇게 밝게 표현했음을 읽는 이는 유의하라. 나쁜 날 이 글이 내 눈에 띈다면 뒤진다는 것 말고 더 쓸 말이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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