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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May 18. 2023

사건의 성별 특정성

오래된 논의이기는 하나 내 주제에 한번 첨언한다. 오늘 청탁금지법 강의에서 해당 법률이 제정된 계기로 "벤츠 여검사 사건"이 언급되었다. 어느 여성 검사가 남성 변호사와 내연관계였는데, 금품 등을 제공받았으나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따라 대가성과 무관하게 금품을 수수한 공직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청탁금지법이 만들어졌다. 알고 보니 해당 검사가 다른 사람과도 내연관계라는 것이 밝혀져 막장 드라마로도 유명한 사건이다.


신기한 점은 이와 유사한 사건이 그 전에도 있었는데 두 사건의 명칭이 다르다는 것이다. 비슷한 방법으로 그랜저 등을 수수한 남성 검사가 있었는데, 해당 사건은 그저 "그랜저 검사"라 불렸다. 사건의 크기나 영향력 측면에서 여성 검사의 사건이 훨씬 주목받는 것이 사실이나, "그랜저 검사"와 "벤츠 여검사"를 병렬시켰을 때 후자가 훨씬 자극적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자극은 "여"라는 단 한 글자에서 파생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여성이 당사자인 사건에 대해 "여"를 붙이는 것은 언론의 오랜 관행이었다. 여성이 이 사건과 같은 주도자(가해자)이든, 여타 사건과 같은 피해자이든 마찬가지이다. 두 종류의 사건에서 여성이 두드러지는 맥락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 여성이 주도적으로 무슨 일을 꾸몄다는 사실 자체가 특이하게 비치게 되고, 후자의 경우 특히 성범죄에서 관음적 여론의 소비 대상이 된다. 여성의 범죄자 비율(<남성)이나 피해자 비율(>남성)이 남성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이 "남"이 아닌 "여"를 통해 발현되는 것은 굉장히 구조적이다.


해당 검사를 동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랜저 검사가 "그랜저 남검사"라 불려야 한다는 것 또한 결코 아니다. 궁극적인 양성 평등의 모습은 성을 비롯한 개인의 다양한 정체성이 공정하게 취급되는 것으로서, 성이 그 자체로 존중받고 다른 맥락에 악용되지 않는 것이다. 두 사건의 본질은 검사가 외부인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하였다는 것이지 검사가 남성이라느니 여성이라느니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성범죄와 같이 성별성이 문제가 되는 경우에도 이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 피해가 있다면 최대한 회복하여야 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 우선이다. 성을 강조하려는 자극적인 의도 회복에 도움되기커녕 2차 가해만 자행한다.


과거에 비해 성문제에 민감한 덕분인지 성을 특정하거나 피해자 부각하는 등의 문제는 점차 해결되는 듯하다. 사소한 워딩이라도 우리의 심층심리를 묘하게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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