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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May 22. 2023

be yourself

나는 내맘대로 살 것이다, 아무도 나를 건들지 마라는 식의 "be yourself" 담론은 겉으로 보기에는 현대 사회의 비교주의적인 문화와 남의 눈치 보기 급급한 개인을 비판하는 건강함을 모토로 하는 듯하다. 돈이라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줄 세우는 자본주의와 남의 소식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배송하는 소셜 미디어가 만나 우월감과 열등감이 폭발적으로 공존하는 시대가 완성되었다. be yourself 담론은 이딴 것들 신경쓰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라는 유사 해방주의를 주창한다.


그렇다. 이것은 해방주의가 아니다. 이것은 해방주의의 명령형 명제만 맥락 없이 가져다 놓은 해방주의의 오용이다. 이러한 담론은 개인을 불필요한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그 프레임에 단단히 구속시킨다. 프레임을 부수는 노력이 아닌 넓히는 시도로써 개인의 소외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be yourself의 실례를 통해 알아보자.  글의 계기가 된 (여자)아이들의 <퀸카(Queencard)> 가사의 일부이다.



(전략)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미모가 쉬지를 않네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부셔 빛이 나네

Oh 저기 언니야들 내 Fashion을 따라 하네

아름다운 여자의 하루는 다 아름답


(중략)

퀸카 I'm hot

My boob and booty is hot

Spotlight 날 봐

I'm a star star star


(중략)

아무거나 걸친 Girl 퀸카카카

마르거나 살찐 Girl 퀸카카카

자신감 넘치는 Girl 퀸카카카

I am a 퀸카

You wanna be the 퀸카


마지막 부분 덕분에 이 곡이 누구든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평등주의를 설파한다는 평가가 있던데, 동의하기 어렵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문단을 보면 "미모", "Fashion", "아름다(움)", "boob" 등 여성의 외모를 상징하는 단어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작가 딴에는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퀸카라 하지 사실은 누구든 퀸카인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문단의 문법은 예쁜 것이 일단 아름다운데 예쁘지 않은 것 아름답다는 확장적 포용이라서 양자의 중요성이 다르게 평가된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 반대의 것들은 어떻게 포용하더라도 관용에 그치게 된다.


진정으로 모든 것이 평등하게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그 전제부터 부숴야 한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론부터 부당하다고 비판한 뒤, 새로운 기준을 세우거나 아무런 기준을 세우지 않는 방법으로 만인을 수용해야 한다. 아쉽게도 위의 가사는 이 수준에 이르지 못 했다. 마지막 문단의 "아무거나 걸친", "마르거나 살찐"과 같은 문구는 작가가 세태의 미적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 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be yourself는 단지 아름다움의 관용만 늘렸을 뿐 그 중심이 되는 개념은 변화시키지 않아 범위 밖의 사람들을 방치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단기적으로는 그 확장된 범위에 포괄된다 하더라도, 미의 기준은 동서고금 확고한 편이라 장기적으로는 재차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궁극에는 소수에 대한 동경으로 회귀하여 자신을 폄하하게 되고, 이를 달래기 위해 잠깐 영역을 넓혔다가, 또 다시 소수에 집중되는 유행이 반복된다. 긴장과 완화가 거듭되며 미와 성공의 기준이 자연스레 (꼭 외모가 아니더라도) 외견 따위에 수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이것이 노골적인 외모지상성보다 위험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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